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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밀라 [全密羅]
작성자 관리자 [2020-01-23 13: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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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밀라 [全密羅] 목사

 

출생 : 1908년 ~ 1985년(사망)

본 적: 충청북도 제천

성별: 여

저서(작품): 한국 최초의 여목사가 되기까지

대표관직(경력): 창영교회 부목사, 여선교회전국연합회 총무, 양광교회 목사(1908∼1985). 감리교 여목사.

 

내용

충청북도 제천 출신. 아버지 연득(軟得)은 기독교인이 된 뒤 제천·청양·충주·원주 등지에서 전도활동을 하였는데, 이에 그녀도 아버지를 따라 이주하며 유년기를 보냈고, 충주와 원주에서 초등교육을 마친 뒤 선교사의 도움으로 공주 영명학교에 들어갔다.

1931년 졸업 후 교장의 권유로 감리교신학교에 입학하여 1935년 졸업하였으며, 원주지방 순회전도사로 임명되었다. 1940년에는 감리교본부의 배려로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신학부에 유학한 적도 있으며, 귀국 후 원주 제일교회·원산 중앙교회를 거쳐 1947년에는 인천 창영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였다.

전도사로 몇 해 동안 일하던 중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여 교회를 담임, 시무하는 길을 택하여 인천 동갈월교회로 임지를 옮겼으며, 1955년 3월 기독교 대한 감리회회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제6회 중부연회에서 10명의 목사가 탄생될 때 또 한 사람의 여성 명화용과 함께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목사안수를 받았다.

 

전밀라 목사

어느 분야보다 여성 차별이 없어야 할 기독교에 여자 목사가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하자 사방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그녀의 생애가 한국의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남긴 무언의 교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서 맨 처음 목사가 된 사람은 전밀라와 명화용이다. 1955년 기독교 대한 감리회로부터 정식 목사로 인정받은 것이다.

 

전체 신도의 70%가 여성, 신학대학 졸업생 40%가 여성이었음에도 그동안 여목사가 없었음.

의식 있는 여성들이 교회 내에서 남녀평등에 대해 꾸준히 건의하고 문제제기를 했음.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 1백 년이 되는 동안 불합리한 인습의 타파, 특히 남녀평등의 씨앗을 싹 틔운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시 전체 신도의 70%가 여성이고, 신학대학 졸업생의 40%가 또한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야 여성목사가 출현했다는 사실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교회에서 여성목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여성은 남성의 갈비뼈' '남성은 여성의 머리'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등의 가부장적인 신학의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교회 내에서도 여성목회자를 인정하지 않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들려온 게 사실이었다. 즉, '여자는 목사로서 합당치 않다' '여자가 목사가 되면 목사의 권위가 실추된다' '여자목사는 목사의 직분을 충분히 할 수 없다'는 편견들이 바로 그것이다. 전밀라와 명화용은 이를테면 이런 교회 내의 성차별을 맨 처음 깨뜨린 여성들이었다.

기독교 감리회에서는 이미 1930년에 여목사 제도를 신설했는데, 그로부터 25년이나 지난 후에 첫 여성 목회자를 배출한 것이다.

1962년 어머니날을 맞이하여 전밀라를 취재한 월간 <여원>에서는 그녀를 선구자라 칭하기를 서슴지 않았고, '보헤미안 같은 여목사'니 '쉰세 살인 성처녀'하는 문구로 기사를 장식하기도 했다.

 

그 해에 창영교회 부목사로 시무하다가 1960년서울 불광동에 있는 양광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1966년에는 여선교회전국연합회 총무로 피선되어 1974년 4월까지 여선교회 사업을 관장하였다. 그 뒤 양광교회에서 시무하다가 1979년 2월 정년으로 은퇴하였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목회활동에 정진하였다.

목사가 된 것은 47세 때였다. 그녀는 전도사 시절인 6·25때 교인들과 함께 교회 지하실에서 공습을 피한 적이 있었는데, 생사의 갈림길에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는 원주에서 순회 전도사로 일한 적도 있으며, 원산 중앙교회, 서울 남산교회에서 전도사로 있다가 인천 갈월교회 전도사로 있을 때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이다.

두 여성이 목사로 진출한 이후 40년이 지난 90년대 중반 한국에는 230명 가량의 여성목사가 있다. 그중 150명은 감리교회 소속이라고 한다.

전밀라 목사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다가 1985년 별세했다.

  

[참고문헌]

『한국감리교를 세운 사람들』(한국감리교회사학회편, 1988)

『감리교(監理敎)와 신학대학사(神學大學史)』(이성삼, 한국교육도서출판사, 1975)

「한국 최초의 여목사가 되기까지」(전밀라, 『기독교사상』, 1973.5.)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전밀라[全密羅]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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