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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성안(全成安)
작성자 관리자 [2020-10-11 21: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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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25] 전성안(全成安)


동문선 제74권

기(記)

수원부 객사지정기(水原府客舍池亭記)

이색(李穡)

 

못과 대(臺)와 언덕과 정자는 유람하는 곳이니, 세도(世道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에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그러나 국가 치란의 자취와 주현(州縣)의 흥망한 이유가 여기에 달려 있다.

대체로 조정이 맑고 밝아 위와 아래가 안락하게 되면, 관리들은 그 직을 즐겁게 여기고 백성들은 삶을 편안히 여기게 되는 것이니, 못과 대ㆍ언덕과 정자가 있지 아니하면 무엇으로써 태평한 시대의 성대한 경관을 형용하겠는가.

법령이 까다롭고 사나우며 세금을 받아들이는 것이 번거롭고 무겁게 되면, 백성은 들에서 한탄하고 관리는 관청에서 곤란을 받게 되는 것이니, 비록 못ㆍ대ㆍ언덕ㆍ정자가 있다고 하여도 어찌 홀로 즐기겠는가. 그렇다면 수원부에서 새로운 정자를 지었는데 정기(亭記)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수원부 동북쪽에 옛 못이 있었으나 황폐된 지 벌써 오래되었다. 전성안(全成安)이 그 고을 원이 되었을 때 황폐된 것을 개탄하고 복구하는 데 뜻을 두어서, 바로 파서 깊게 하고 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새 정자를 날아갈 듯하게 세웠는데, 재정은 관청에서 나오지 아니하고 노역은 백성에게 미치지 아니하였다.

새로 낙성함에 이르러 고을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놀란 얼굴을 지어 서로 쳐다보면서 말하기를, “어떻게 낙성을 그렇게 쉽사리 하였는가. 반드시 신이 와서 도운 것이구나. 우리들을 노역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와 같이 잘 되었을까.” 하니, 아, 전군은 백성 부리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때마침 전군은 서울로 전보되어 가고 비서소감(秘書少監)으로 있던 안군(安君)이 양광도(楊廣道 지금의 경기도)에 나가 다스릴 때 전군의 정사(政事)한 것이 능함을 아름답게 여겨 나한테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 “전씨의 자취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요, 그리고 이것을 후세에 전하는 것은 오직 글에 있는 것이므로 그대는 사양하지 말고 정기(亭記)를 써주기를 바라오.” 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수원 안찰부가 다스리는 것은 여러 고을을 단속하는 것이므로 한 도(道)의 문물이 모여드는 곳이 된다. 그러나 그 성쇠ㆍ흥망이 또한 한 도의 선두가 된다. 이제 전군은 위엄과 은혜가 동시에 이르렀고, 모아들이는 것이 마땅함을 얻어 또한 가난한 백성을 괴롭히지 아니하고 우리 나라의 태평한 아름다움을 잘 넓혔다. 안군의 직책을 말하면 백성의 풍습을 살피는 지위에 있어 남의 착한 것을 말하기 즐기니 모두 정기에 쓸 만하다.

뒷날 내(이색)가 공을 이루고 벼슬에서 물러갈 적에 이 고을을 지나다가, 만일 연꽃 피는 때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수레를 멈추고 정자에 올라가서, 내가 지은 이 글(정기〈亭記〉)을 꼭 읽어보고 가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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