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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재규의 꿈’ 싣고
작성자 관리자 [2020-04-25 20: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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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재규의 꿈’ 싣고…

얼음 부수며 남극바다 누빈다. 

■ 12월 출항하는 국내 첫 쇄빙선 ‘아라온호’ 건조현장 가보니

 

 

 

실험연구실에 헬기장까지…만능기능 갖춘 바다의 슈퍼맨

선진국서 공동연구 잇단 제의, 한국 극지연구 위상 급상승

 

#1. 2003년 12월 7일. 전날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고무보트인 세종2호를 타고 나갔던 대원 3명과 연락이 끊겼다. 남은 5명의 대원은 수색대를 구성해 세종1호를 타고 동료들을 구조하기 위해 나섰다. 이날 오후 8시 50분경 세종1호는 “보트에 이상이 생겼다. 물에 빠졌다…”는 마지막 소식을 전한 뒤 교신이 두절됐다. 세종2호에 탄 대원들과 바다에 빠진 수색대원 중 4명은 구조됐지만 전재규 연구원(당시 27)은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남상헌 하계대장(현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극지운영실장)은 “체격도 야리야리한 친구를 그 차가운 물에서 떠나보냈다”며 가슴을 쳤다. 대원들은 “쇄빙선 한 척만 있었어도…” 하며 통곡했다.


#2. 2009년 6월.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는 국내 최초의 쇄빙선인 아라온호가 90% 이상 건조돼 막바지 단장이 한창이었다. 쇄빙선 건조사업을 총괄 지휘하는 남 실장은 수시로 이곳을 찾아 뿌듯한 마음으로 아라온호와 만난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이 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재규에게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아라온호를 볼 때마다 너무 고맙고, 또 너무 미안할 뿐입니다.” 전 씨와 같은 보트에 탔다가 구조된 정웅식 연구원은 “고인의 희생으로 아라온호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 씨의 유해는 2007년 10월 국립대전현충원 의사상자 묘역에 안장됐다. ‘춥지 않나요? 거긴 항상 따뜻했으면 좋겠어요. 잊지 않을게요.’ 전 씨를 추모하는 홈페이지(cafe.daum.net/sejongjaegu)에는 요즘도 간간이 방문객들이 들어와 글을 남긴다. 전 씨의 죽음은 얼음을 깨고 운항할 수 있는 쇄빙선 건조 시기를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이전부터 쇄빙선을 만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사고가 난 뒤 쇄빙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자극받아 건조 작업에 더욱 속도를 냈다. 극지 연구의 꿈을 담아 영도조선소에서 건조되는 아라온호를 미리 살펴봤다.


○ 선체 앞부분 밑쪽에 ‘아이스 나이프’ 장착

영도조선소 독은 아라온호를 도장하고 프로펠러를 고정시키는 작업 등으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붉은색 선체에 새겨진 흰색의 ‘아라온’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바다를 뜻하는 옛 우리말 ‘아라’에 모두라는 의미의 ‘온’을 붙인 말로, 모든 바다를 누비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일반 배는 선체 앞부분 아래가 둥글지만 아라온호는 선체 앞부분 밑쪽에 얼음을 자를 수 있는 ‘아이스 나이프’가 장착돼 있다. 한진중공업 임태완 선임설계원은 “선체에 칠하는 도료도 돌덩이처럼 단단해 얼음 조각에 쉽게 긁히지 않는다”며 “섭씨 영하 30도에서 영상 50도까지 견딜 수 있어 극지와 적도를 전천후로 누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후미에 프로펠러 2개가 있고 배 앞쪽에도 보조 프로펠러 2개가 장착됐다. 후미의 프로펠러는 몸체가 수평 방향으로 360도 회전해 아라온호는 전후좌우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깨진 얼음이 배에 달라붙으면 선체를 흔들어 얼음을 털어낸다. 일반 배는 얼음조각이 그대로 배에 얼어붙어 꼼짝없이 그 자리에 갇히게 된다. 아라온호는 진동이 심한 엔진이 아니라 발전기로 가동되는 전기모터로 움직여 떨림이 적고 조용해 연구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자동위치유지장치(DP)를 달아 해류나 바람 등에도 배가 움직이지 않고 특정 위치에 그대로 떠 있을 수 있어 해저 탐사를 하는 데도 유리하다.

각종 실험 장비가 설치된 연구실과 컨테이너를 실을 공간은 물론이고 헬리콥터장과 격납고도 갖췄다. 유리 창문 등 곳곳에 열선을 넣어 혹한에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임 설계원은 “아라온은 얼음을 깨는 것은 기본이고 25t 크레인으로 자체 하역까지 가능한 ‘슈퍼맨’ 같은 배”라고 말했다.


○ 한국 극지연구,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선진국들은 극지가 각종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된 ‘신천지’라는 점에 주목해 극지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극지 연구에 쇄빙선은 필수품이지만 한국은 남의 나라 배를 빌리거나 얻어 타야 했다. 남극에 기지를 둔 20개국 가운데 쇄빙선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폴란드뿐이다.

쇄빙선을 빌리려면 하루에 8000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들고 혹한과 유빙에 견딜 수 있는 내빙선(耐氷船)을 빌리는데도 하루 4000만 원 가까운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나마 빌릴 수 있는 기간이 제한돼 가고 싶은 곳도 마음껏 다니기 어려웠다. 남극에서 연구하기에 적합한 시기는 여름인 11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로 이때는 다른 나라들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쇄빙선은 ‘귀한 몸’이 된다. 정경호 극지연구소 대륙기지사업단장은 “쇄빙선이 있는 미국은 3, 4개월을 항해하면서 연구하는 반면 우리는 길어야 한 달 반 정도 항해할 수 있어 늘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 단장은 “오랫동안 셋방살이를 하다 마침내 내 집을 마련한 느낌”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아라온호의 탄생으로 극지 연구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은 높아졌다. 벌써부터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들이 공동 연구를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극지연구소가 올해 개최하는 심포지엄에 참가하는 외국 연구원들도 크게 늘었다. 극지연구소 이지영 홍보팀장은 “심포지엄에 외국 연구원을 초청하려면 체재비 전액을 지원해야 10명 안팎이 참가했는데 올해는 주제가 쇄빙선인 점도 있겠지만 48명이나 신청했다”며 “대부분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겠다고 해 달라진 위상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아라온호는 8월 중순 공식 시운전에 들어간다. 10월에는 인도 명명식을 갖고 12월 남극으로 출항할 예정이다.


부산·인천=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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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규 대원은...?

 

"누구보다 강했다"

“그는 누구보다 우수하고, 강인하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앞으로 1년간 남극에서 실전으로 경험해 단단해져 돌아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어요. 잠시도 쉬질 않았습니다. 차단된 극한 환경 속에서 누구보다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며 연구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보였습니다. 일을 대충하는 법이 없이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차트와 표를 만들어 논리 정연하게 일을 추진해 나갔어요.”

남극세종기지에서 연구원 전재규(27)씨가 숨진 것으로 확인됐을 때, 그와 20여일을 함께 보냈던 한 동료는 기자와의 국제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로가 다급한 생황에서도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그야말로 ‘참 착한 이’였다”고도 했다.

전씨는 지진전문가를 꿈꾸는 과학도였다. 그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지질전공)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 진학, 지구과학물리시스템 전공으로 3학기를 마쳐 졸업 논문을 남겨 놓은 상태였다.

고학생이던 그는 “논문준비에 꼭 필요한 일일뿐 아니라, 학업을 계속하는데 경제적으로 작은 도움도 될테니 다녀오겠다”며 한국해양연구원 소속 1년 계약직으로 지난달 20일에 남극기지로 떠났다. 지도가 없는 남극땅에서 그는 세종기지 대원들 중 유일한 GPS(지리정보시스템)전문가였다. 지진계와 위성위치를 관측해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1남 1녀 중 장남이었다. 고향인 강원도 영월에서 내성 초등학교와 영월중·고를 12년 내내 1등으로 다녔다. 서울대를 다닐 때도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았으며 평소 “부모님 힘드신다”며 옷도 사입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형편의 부모 걱정을 덜어준 효자였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출국 전에는 부모를 찾아 10여일간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남극에 도착한 뒤에는 수시로 안부전화를 걸어 남극생활을 들려주기도 했다. 아버지 전익환(55)씨는 “위험하다고 말렸는데 요지부동이었다”며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했던 것이 너무 후회스럽다”면서 식사도 거른 채 아들 사진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갑작스러운 비보를 전해들은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박창업(57) 지도교수는 “재규군은 머리가 대단히 좋고 착실한 학생이었다”며 “남극에서 돌아오면 우리나라 지진을 연구할 예정인 수재였는데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같은 학과 선배인 전성천씨는 “하루종일 연구실에 앉아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연구에 전념 하던 열정이 충만한 후배였다”고 말했다.

전재규씨는 좌우명이 ‘작은 것이 아름답다’이고 취미는 ‘SF 영화보기와 별보기’라고 출국 전 세종과학기지 홈페이지에 썼다. 그는 또 “남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생활을 경험하고 자연환경을 알고 싶어 남극에 간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선일보] 신지은기자 (ifyouare@chosun.com )


출처 http://cafe.daum.net/sejongjae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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