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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려시대 판도판서 성산군 전흥
작성자 관리자 [2023-05-15 23: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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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판서 성산군 전흥

 

고려 고종 때 문과에서 급제하여 벼슬이 좌우헌납을 거처 봉익대부 판도판서에 이르렀다.

 

고종 18년인 1231年에 몽고 총사령관 사르타이〔撒禮塔〕가 침입하여 평안북도 구주성(龜州城)을 침공하는 등 나라가 위기에 처함에 조정에서는 왕의 동생 회안공(王弟 淮安公)을 사르타이〔撒禮塔〕에게 보내어 화의를 맺으니 다음 해 1월에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1232年 6月 조정은 몽고의 병란을 피하여 강화도로 천도하기에 이르렀으며, 1232년 7월에 전흥(全興)은 서북계 여러 성에서 몽고병을 대파하고 활(矢) 등을 노획하였다.

1232년 12월에 사르타이〔撒禮塔〕가 다시 침범하여 처인성에 이르렀을 때 승장 김윤후가 사르타이〔撒禮塔〕를 사살하였다. 전흥(全興)은 몽고 병란에 세운 훈공으로 벼슬이 大匡(고려의 종1품 관직)에 오르고 성산군(星山君)으로 피봉 되었다.

 

묘는 장단군에 있으며 1941년 4월에 강화군 인산리에 설단하고 신도비를 세웠다. 1973년 원모재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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