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高麗 開國功臣 太師 忠烈 全公 以甲 殉節碑文 | |||
작성자 | 관리자 [2020-02-03 19:48: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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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개국공신 태사 충렬 전공 이갑 순절비문 (高麗 開國功臣 太師 忠烈 全公 以甲 殉節碑文) 이 비(碑)는 고려(高麗) 개국공신(開國功臣) 태사(太師) 충렬(忠烈) 전공(全公)이 고려 태조(太祖)를 도와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과 이곳 공산(公山) 동수(桐藪) 전투(戰鬪)에서 순국진충(殉國盡忠)한 대절(大節)을 현창(顯彰)하는 순절비(殉節碑)이다. 때는 신라(新羅) 천년(千年) 사직(社稷)이 이루던 9세기말에 견훤(甄萱)은 무진(武珍), 완산(完山)에서 후백제를 세웠고 궁예(弓裔)는 송악(松嶽)에서 후고구려(後高句麗)라 한 뒤 철원(鐵原)에서 다시 태봉(泰封)이라 외치니 바야흐로 옛 삼한(三韓)땅은 후삼국(後三國)으로 난립(亂立)되어 각축(角逐)의 시대를 맞는다.
일찍이 공(公)은 기랑(騎郞)이 되어 궁예(弓裔) 막하(幕下)의 왕건(王建)을 송악에서 만나 그가 능히 삼한통합(三韓統合)의 주(主)가 됨을 알고 창생홍제(蒼生弘濟)의 웅지(雄志)를 상약(相約)하였다. 이로부터 왕건(王建)과 더불어 동벌서정(東伐西征)하여 서기 896년 병진(丙辰)에는 송악에 발어참성(勃禦塹城)을 쌓고 양한주(楊漢州)와 서원(西原) 등 한남(漢南)의 제군(諸郡)을 토평(討平)하였다.
서기 906년 병인(丙寅)에 정기장군(精騎將軍) 유금필(庾黔弼)과 상주(尙州) 사화진(沙火鎭)에서 견훤(甄萱)을 몰아치고 다시 4년 후 금성(錦城) 포구(浦口)에서 견훤군(甄萱軍)을 대파(大破)하니 왕건(王建)은 곧 파진찬(波珍飡) 겸 시중(侍中)이 되고 공(公)의 위무(威武)는 사해(四海)에 떨쳤다. 이에 조야(朝野)의 민심(民心)은 왕건(王建)에게로 기울고 궁예(弓裔)는 이를 공구(恐懼 : 몹시 두려움)하고 시의(猜疑 : 시기하고 의심함)하여 날로 광폭(狂暴)해지니 공(公)은 왕건(王建)에게 진언(進言)하여 외직(外職)인 백선장군(百船將軍)이 되게 하고 금성(錦城)에 출진(出陣)하여 군적(群賊)과 기황(飢荒)을 진무(鎭撫)하였다.
드디어 천명(天命)이 이미 궁예(弓裔)를 떠났음을 안 공(公)은 신숭겸(申崇謙),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 복지겸(卜智謙) 등 제장(諸將)과 함께 왕건(王建) 잠저(潛邸)에 이르러 폐혼입명(廢昏立明)과 응천순인(應天順人)의 대의(大義)를 들어 왕건(王建)을 추대(推戴)하여 군신(君臣)의 예(禮)를 행하니 때는 서기 918년 무인(戊寅)이며 고려(高麗) 개국(開國) 천수(天授) 원년(元年)의 일이다.
천수(天授) 3년(서기 920년)에 후백제가 대량(大良), 구사(仇史) 두 성(城)을 공함(攻陷)할 때 신라 아찬(阿飡) 김률(金律)이 구원(救援)을 청함에 공(公)은 정기대장(精騎大將) 신숭겸(申崇謙)과 함께 견훤군(甄萱軍)을 천령군(天嶺郡) 마리현(馬利縣)까지 추격(追擊), 패퇴(敗退)케 하였다. 천수(天授) 10년(서기 927년) 정해(丁亥) 9월에 견훤(甄萱)이 다시 신라와 고려를 이간(離間)하려고 고울(高欝 : 지금의 영천)을 공략(攻略)하여 중로(中路)를 두절(杜絶)시킨 후 고려 원병(援兵)이 이르기에 앞서 신라 도성(都城)을 유린(蹂躪)하여 포석정(鮑石亭)에서 곡수지연(曲水之宴) 중이던 경애왕(景哀王)을 자진(自盡)케 하고 나도(羅都)를 탕애(蕩艾 : 쑥대밭)의 땅으로 초토화(焦土化)시켰다.
이에 고려 태조(太祖)는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과 충절공(忠節公) 김락(金樂)을 좌우대장(左右大將)으로 명하고 공(公)을 부장(副將)으로 삼아 정기(精騎) 5천을 친솔(親率)하고 별이 빛나는 밤에도 남(南)으로 말을 달려 견훤군(甄萱軍)과 이곳 공산(公山) 동수(桐藪)에서 만났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혼전(大混戰)에서 고려군(高麗軍)이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수 겹으로 포위(包圍)되어 위급(危急)한 형세(形勢)에 이르자 여러 장수(將帥)들이 태조(太祖)를 미복(微服)으로 탈출케 하고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이 어차(御車)에 대승(代乘)하여 분전(奮戰)하였으나 왕(王)을 대신해 순절(殉節)하는 격전(激戰) 속에 군사(軍士)가 거의 전멸(全滅)하니 장절공(壯絶公), 충절공(忠節公)과 공(公)이 세칭(世稱) 팔공삼절(八公三節)의 영명(英名)을 천백세(千百歲)에 남기고 공(公)의 아우도 함께 순절(殉節)하였으니 그 곳이 바로 지묘미리사(智妙美利寺) 앞이다. 뒷날 태조(太祖)가 몹시 슬퍼하였다.
휘(諱) 이갑(以甲)인 공(公)은 통합삼한 개국공신 태사 겸 상서좌복야 시충렬공(統合三韓 開國功臣 太師 兼 尙書左僕射) 봉정선군(封旌善君)으로 추증(追贈)되고 공(公)의 아우 휘(諱) 의갑(義甲)은 산기상시 문하시랑 시충강공(散騎常侍 門下侍郞 諡忠康公) 죽산군(竹山君)으로 피봉(被封)되고또한 표충지묘사(表忠智妙寺)를 창건(創建)하여 명복(冥福)을 빌게 했다.
공(公)의 위국충절(爲國忠節)을 현양(顯揚 : 세상에 높이 드러냄)하는 일은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도 면면(綿綿)했으니 그 후손에 대한 태조(太祖), 태종(太宗), 선조(宣祖), 효종(孝宗) 열성조(烈聖朝)의 승음교지(承蔭敎旨 : 공신이나 당상관의 자손이 과거를 보지 않고 관리로 임명되게 하라는 교지)가 여러 차례 반포(頒布)되어서 크고 작은 고강(考講 : 과거의 강경과에서 시험관이 지정한 경서를 외는 것으로 치르는 시험)을 면(免)하게 하는 관문(關文 :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에 보내는 공문서)과 완문(完文 : 관에서 발급하던 증명서)이 수차례 있었고 강호(江湖) 유림(儒林)이 한천서원(寒泉書院) 및 도계서원(道溪書院)까지 세워 천재(千載 : 천 년의 세월)의 영웅(英雄)을 병향(並享)하였다.
공(公)의 시조(始祖)는 휘(諱) 섭(聶)으로 백제(百濟) 개국공신(開國功臣) 환성군(歡城君)이시고 휘(諱)가 선(愃)인 정선군(旌善君)은 중조(中祖)가 되며 여러 세대(世代) 후에 전교시사(典校寺事) 휘(諱) 우상(禹相)이 공(公)의 아버지이시며 어머니는 구씨(具氏)이고 배(配)인 기씨(箕氏)는 상대등(上大等)인 우(佑)의 따님이시다.
무릇 역사(歷史)는 만세(萬歲)를 비추는 거울일진데 슬프다 공(公)의 이같은 탁절(卓節 : 뛰어나게 높은 절개와 지조)과 외훈(巍勳 : 뛰어나게 큰 공훈)이 어찌 정사(正史)에 결락(缺落 : 있어야 할 부분이 빠져서 떨어져 나감)되고 공산(公山) 파군치(破軍峙)에 무덤없이 외로운 혼(魂)이 되었단 말인가. 도원유적(桃源遺蹟)과 달구읍군지(達丘邑郡誌) 등 다수의 유기(遺記)가 비로소 공개되고 그 역사의 현장인 이곳 팔공산(八公山) 국립공원(國立公園)에 공(公)의 얼을 기리기 위하여 견비(堅碑 : 굳게 비석을 세움)하게 되니 수사(修史 : 역사를 엮고 가다듬음)의 임무를 맡은 본인(本人)이 비록 형식에 맞지 않는 글이지만 흙 속에 묻혔던 보감(寶鑑)을 캐어낸 듯이 기쁘고 감개무량(感慨無量)하여 감히 붓을 들어 삼가 명(銘)하노니 일개 호족(豪族)이었던 왕건(王建)에게 탕무[湯武 : 은(殷)나라의 탕왕(湯王)과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의 정사(政事)를 권하여 고려 태조(太祖)가 되게 하였음은 능히 고려의 초석(礎石)이요, 왕(王)을 대신하여 목숨을 버린 것은 저 노(魯)나라의 왕기(汪踦 : 어린 아이임에도 전쟁에 나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음)와 한(漢)나라의 기신(紀信 : 한고조 유방을 대신해 항우에게 죽임을 당한 충신)에 무엇이 다를 바 있으리오.
형을 따라 아우마저 순절(殉節)한 일문(一門)의 장렬(壯烈)함이야 어찌 당(唐)나라의 안씨(顔氏) 가문(家門)인들 이를 따를 것이며 섬광(閃光)같은 지략(智略)과 삼한(三韓)에 떨친 무용(武勇)은 어찌 제갈무후(諸葛武侯 : 제갈량)가 부럽다 하겠는가. 고려 태조(太祖)의 삼한(三韓) 평정은 곧 한민족(韓民族)의 재통일(再統一)일진데 그 영주(英主 : 매우 슬기롭고 뛰어난 임금)를 구한 곳이 하필이면 공산(公山)이었던가. 이곳 공산(公山)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소원(所願)하던 신라(新羅)의 중악(中岳)인데 공(公)이 스스로 이 제단(祭壇)에 제단(祭壇)에 제물(祭物)로 헌신(獻身)한 것은 민족통일(民族統一)의 염원(念願)이 아니고 그 무엇이리오.
그 한 몸 던져 태평성대(太平聖代)의 무릉(武陵 : 무릉도원)을 기렸던가. 사호(賜號)는 또 어이하여 도원(桃源)이었던고. 공(公)은 비록 천 년 전에 가셨어도 당신이 남기신 살신진충(殺身盡忠)의 숭고한 얼은 이 땅 만세(萬歲)의 수호신(守護神)이 될 지어다. 서기 1989년 초봄 대한민국(大韓民國) 국사편찬위원회(國史編纂委員會) 위원장(委員長) 박영석(朴永錫) 삼가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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