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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운재 중수기(瑞雲齋 重修記)
작성자 관리자 [2020-02-03 20: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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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재 중수기(瑞雲齋 重修記

   

천도(天道)가 좋게 돌아오는 이치를 보고 모든 인간사(人間事)를 징험(徵驗)하여 많이 겪어봐도 어긋남이 없었다.

나의 동쪽 한()나라의 정선전공(旌善全公)공의 가승(家乘)이 깊고 장구(長久)하여 그 근원(根源)이 멀고 흐름이 깊어서 적선여경(積善餘慶)이 지금까지 더욱 나타남에 깊이 감탄(感歎)하였다.

 

살펴보니 전씨성(全氏姓)은 하우씨(夏禹氏)의 후예(後裔)로 기자(箕子)가 동천(東遷)할 때 따라왔으며 그 뒤 홍농후(弘農候) () ()에 이르려 한()나라에서 벼슬하여 공훈(功勳)을 세운 탓으로 승상(丞相)의 자리에 이르렀고 이어서 승상(丞相)의 발자취가 있더니 그 뒤 정선군(旌善君)에 이르러 대광공주(大光公主)를 모시고 본국(本國)에 돌아와 군()에 봉()해지니 지금 그 후손(後孫)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계속하여 명성(名聲)이 모든 조정(朝廷)에 자자하여 명공석덕(名公碩德)과 구국공훈(救國功勳)을 가히 다 기록할 수 없다.

국파(菊坡)()같은 도덕문장가(道德文章家)가 원나라에 들어가 한림(翰林)이 되었고 채미헌(採薇軒)()은 려조말(麗朝末)에 태학사(太學士)로 절개(節槪)를 지켜 굴하지 않고 드디어 서운산(瑞雲山)에 숨어서 홀로 충절(忠節)을 지켰으니 가히 백대(百代)에 교화(敎化)될 것이며 진실로 탁월(卓越)한 분이다.

 

서운(瑞雲)은 그 산의 이름이고 정선(旌善)()의 묘()가 이 산()에 있으므로 인하여 그 재실(齋室)을 일러 서운재(瑞雲齋)라 하였다.

창건(創建)한지가 오래되어 퇴락(頹落)되고 이지러지니 제종족(諸宗族)이 힘을 모아 중수(重修)하고 마침 종족(宗族)들이 종약(宗約)을 세워 모여서 돈목(敦睦)하고 서로 도우니 가히 그 종족(宗族)에 현인(賢人)들이 많음을 깨닫게 한다.

 

그 종족(宗族)들이 병훈(秉薰)에게 부탁하여 기문(記文)을 나에게 청()하니 오호(嗚呼)! 병훈(秉薰)군이 비록 한()나라 사람이지만 그 선조(先祖)인즉 우리 중화(中華)의 한겨레이며 그가 중국(中國)에 와서 나와 서로 의지하여 예서(禮書)와 예복(禮服)을 증정(贈呈)하고 우리나라(中國)를 예()로서 다스릴 것을 진언(進言)하였다.

 

또 그가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과 제설(諸說)을 저작(著作)한 바 있으니 사대부(士大夫)가 홍범구주(洪範九疇)에 이어 추중(推重)되고 비길만하다.

그 길이 멀리 미치지 않음이 없으니 이 나라 백성의 복()됨이며 이에 가히 그 학술(學術)이 장차 온 천하(天下)에 고루 알려져 세계(世界)를 놀래게 하리라.

그 원류(源流)를 거슬러 본즉 어찌 그 선조의 음덕(蔭德)이 호환(互換)하여 천양(闡揚)함이 아니겠는가?

세 경신 사평(1920)

(歲 庚申 蜡平)

 

중국 전 광록대부 양강총독 풍윤 장인준 식

(中國 前 光祿大夫 兩江總督 豐潤 張人駿 識)

 

중국 전 한림원수찬 숙녕 유춘림 서

(中國 前 翰林院修撰 肅寗 劉春霖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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