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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팔급(全八及)
작성자 관리자 [2022-12-06 10: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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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팔급(全八及)

 

□ 약전(略傳)

 

전팔급(全八及, 1542∼1613)의 자는 경추(景追)이고 호는 원계(原溪)이며, 본관은 죽산(竹山)으로 가조(加祚)에 거주하였다. 그는 1542년(중종 37년)에 아버지 확(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전팔급이 세상을 떠나자 문위(文緯)가 다음의 만(挽)을 지었다.

 

하늘의 뜻을 나로서는 알지 못하겠다.

어떤 사람은 궁하게 살고 어떤 사람은 영화롭게 사는고

하늘의 이치는 나로서는 알지 못한다.

누구는 통하고 누구는 꽉 막혔는고.

 

부지런히 외롭게 밝은 창문 앞에서 『중용』과 『대학』을 읽었다더라.

부지런하고 괴로운 한평생에 무슨 일을 이루었던고.

베옷 입고 머리가 희도록 풀집에 누웠더라.

72년 만에 만사를 잊고 세상을 떠나니

헌책 나물 먹던 밥상만 옛집에 남았다.

 

병들고 추워서 상여줄도 잡지 못하니

구원(九原) 다른 날에 면목이 없겠다.

가야산은 높고 높은데 눈과 달이 밝구나.

동을 바라보고 하염없이 눈물만 적신다

 

(『茅谿集』).

 

□ 참고자료

 

文緯, 『茅谿集』.

 

[출처] 남명학연구소

 


문위 [ 文緯 ]


 

정의

조선시대 선공감주부, 사헌부감찰, 고령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거창(居昌) 출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순부(純夫), 호는 모계(茅溪).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문산두(文山斗)이며, 어머니는 함양선교랑(咸陽宣敎郞) 오세평(吳世平)의 딸이다. 조식(曺植)·오건(吳健)·정구(鄭逑)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거창에서 의병들을 모집하고, 의병장 김면(金沔)과 함께 고령(高靈)에서 왜군을 맞아 싸웠다. 김면이 싸움 중에 병으로 죽자 뒷일을 맡아 처리하였다. 또한, 부모의 상을 당하자 고향인 거창현 모계리(茅溪里)에 터전을 마련하고, 10여 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와 같은 독행(篤行)으로 부제학(副提學) 김우옹(金宇顒),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에게 천거되어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다. 그 뒤 선공감주부(繕工監主簿)·사헌부감찰을 지냈다.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정인홍(鄭仁弘)과는 같은 조식의 문인으로 구면이었으나, 그가 대북(大北)의 집권자가 되자, 관계를 끊고 두문불출 독서에 전념하였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 후 70세의 나이로 고령현감에 부임하였으나, 수개월 뒤 병으로 사임하였다. 거창의 용원서원(龍源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에는『모계집(茅溪集)』이 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용주유고(龍洲遺稿)』 『모계집(茅溪集)』 『기언(記言)』

 

[네이버 지식백과] 문위 [文緯]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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