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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려시대 문신 전윤장(全允藏)에 대하여 정선전씨인지 천안전씨인지 궁금해 하는 분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성자 관리자 [2021-01-10 1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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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시대 문신 전윤장(全允藏)에 대하여 정선전씨인지 천안전씨인지 궁금해 하는 분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족보를 보면 된다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문헌이 가장 중요한 논거가 될 것입니다.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이 계신다면 족보 말고 객관적인 문헌으로 이의를 제기하면 될 것입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전윤장(全允藏)의 기록이 많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정선전씨인지 천안전씨인지 언급이 없습니다.

고려시대 문신 전윤장(全允藏)은 정선 전씨입니다.

근거문헌은 국가적인 사업으로 대한제국때에 발행한 증보문헌비고(1908년, 융희2년)입니다.

번역문을 아래에 첨부하였습니다.

 

2. 정선전씨 시조는 “선(宣)”이고, 천안전씨 시조는 “섭(聶)”이라는 의견을 가지신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선전씨의 시조는 “섭(聶)”입니다.

근거문헌은 증보문헌비고(1908년, 융희2년)입니다.

※증보문헌비고 본문 이미지에는 “선(宣)”으로 나와 있지만 정오표에 의해서 “선(愃)입니다.

[근거문헌]

국역 증보문헌비고

증보문헌비고 제51권 - 제계고(帝系考) 1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주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번역문

◇ 전씨(全氏)

〔하우씨(夏禹氏)의 먼 후손인 왕몽(王蒙)이란 자가 공갑(孔甲)의 난(亂)650) 때에 유누(劉累)와 함께 조선(朝鮮)으로 도망하였다. 그 후 진한(辰韓)ㆍ마한(馬韓) 때에 "초가집에 사는 왕몽이 임금이 되리라."는 동요가 있었다. 왕몽이 이를 듣고 두려워하여 몸을 바닷가에 숨기고, 사람들이 자기를 왕씨로 알까 두려워하여, 왕자(王字) 위에다 사람 인자(人字)를 더하여 성(姓)을 전씨(全氏)로 하니, 여러 세대(世代)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650) 공갑(孔甲)의 난(亂):공갑(孔甲)은 하(夏)나라 임금으로, 귀신을 좋아하고 음란한 일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제후(諸侯)가 배반하여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진 것을 말함.

[출처]

국역 증보문헌비고

증보문헌비고 제51권 - 제계고(帝系考) 1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주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번역문

◆ 정선 전씨(旌善全氏)

시조 전섭(全聶)〔십제 공신(十濟功臣)으로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 전섭의 아들 전호익(全虎翼)〔벼글이 백제(百濟)의 병상(兵相)이었다.〕 전호익의 6세손 전선(全宣)〔전선(全愃)으로도 쓰며, 정선군(旌善君)에 봉해졌다. ○ 백제(百濟) 다루왕(多婁王) 때에 전호익(全虎翼)의 아들 전반(全槃)이 낭장(郎將)으로 한(漢)나라에 들어가 표기 대장군(驃騎大將軍)이 되었는데, 전반의 5세손 전선(全宣)이 대광 공주(大光公主)의 배신(陪臣)으로서 우리 나라에 왔다.〕 전선의 증손 전이민(全而敏)〔벼슬이 신라(新羅)의 이찬(伊飡)이었다.〕 전이민의 5세손 전의갑(全以甲)〔벼슬이 고려(高麗)의 태사(太師)였으며, 시호는 충렬공(忠烈公)이다.〕 전이갑의 아우 전의갑(全義甲)〔벼슬이 산기상시(散騎常侍)였으며, 시호는 충강공(忠康公)이다.〕 전선의 후손 전승택(全承澤)〔벼슬이 첨의 정승(僉議政丞)이었다.〕 전승택의 아들 전연(全演)〔벼슬이 평장사(平章事)였으며, 시호는 문경공(文敬公)이다.〕 전이갑의 아들 전보인(全輔仁)〔벼슬이 좌복야(左僕射)였으며, 시호는 문경공(文敬公)이다.〕 전보인의 손자 전함정(全咸正)〔벼슬이 판도판서(版圖判書)였으며, 시호는 공의공(恭毅公)이다.〕 전함정의 5세손 전존걸(全存傑)〔벼슬이 대장군(大將軍)이었다.〕 전존걸의 아들 전수룡(全守龍)〔벼슬이 도순사(都巡使)였다.〕 전수송(全守松)〔벼슬이 호부 상서(戶部尙書)였다.〕 전수룡의 아들 전의(全懿)〔벼슬이 찬성사(贊成事)였으며, 시호는 위열공(威烈公)이다.〕 전여(全輿)〔벼슬이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였다.〕 전흥(全興)〔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다.〕 전익(全翼)〔황간군(黃澗君)에 봉해졌다.〕 전의의 증손 전영보(全英甫)〔벼슬이 좌복야(左僕射)였으며, 도원군(桃源君)에 봉해졌다.〕 전영보의 아들 전윤장(全允藏)〔벼슬이 평장사(平章事)였으며, 석릉군(石陵君)에 봉하여졌다.〕 전의의 손자 전방숙(全邦淑)〔벼슬이 평장사(平章事)였으며, 시호는 문정공(文貞公)이다.〕 전함정의 7세손 전보문(全普門)〔벼슬이 판삼사사(判三司事)였으며, 시호는 안경공(安敬公)이다.〕 전보문의 아들 전우화(全遇和)〔벼슬이 어사 대부(御史大夫)였다.〕 전우화의 아들 전분(全賁)〔벼슬이 전서(典書)였으며, 시호는 평간공(平簡公)이다.〕 전분의 아들 전오륜(全五倫)〔벼슬이 산기상시(散騎常侍)였으며, 서원(書院)에 배향되었다.〕 전오기(全五紀)〔벼슬이 전법 판서(典法判書)였다.〕 전보인의 13세손 전언(全彦)〔감천군(甘泉君)에 봉해졌다.〕 전여의 현손 전집(全潗)〔완산군(完山君)에 봉해졌다.〕 전보인의 12세손 전이도(全以道)〔벼슬이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였다.〕 전여의 현손 전경(全卿)〔나성군(羅城君)에 봉해졌다.〕 전윤장의 증손 전신(全信)〔벼슬이 제학(提學)이었다.〕 전신의 9세손 전용(全龍)〔공신으로 석릉군(石陵君)에 봉해졌다.〕 전오륜의 손자 전유은(全由恩)〔벼슬이 형조 판서(刑曹判書)였다.〕 전효우(全孝宇)〔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한림(翰林)이었다.〕 전효원(全孝源)〔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직제학(直提學)이었다.〕 전오기의 후손 전목(全穆)〔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한성윤(漢城尹)이었다.〕

전충효(全忠孝)〔진사(進士)로서, 한 파(派)를 이루었다.〕

전민행(全敏行)〔벼슬이 훈도(訓導)였으며, 한 파를 이루었다.〕

[출처]

국역 증보문헌비고

증보문헌비고 제51권 - 제계고(帝系考) 1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주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번역문

◆ 천안 전씨(天安全氏)

시조 전종도(全宗道)〔벼슬이 정승(政丞)이었다. ○ 전이민(全而敏)의 현손이다.〕 전종도의 아들 전악(全樂)〔벼슬이 좌복야(左僕射)였으며, 시호는 충달공(忠達公)이다.〕 전악의 아들 전홍술(全洪述)〔영산군(寧山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무강공(武康公)이다.〕 전홍술의 아들 전충우(全忠佑)〔벼슬이 시중(侍中)이었고, 환계군(歡溪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충숙공(忠肅公)이다.〕 전충우의 아들 전세주(全世柱)〔벼슬이 소경(少卿)이었고, 천성군(天城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정공(文靖公)이다.〕 전세주의 아들 전인량(全仁亮)〔벼슬이 좌정승(左政丞)이었고, 천양군(天陽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무절공(武節公)이다.〕 전인량의 아들 전조(全朝)〔벼슬이 판공부사(判工部事)이었다.〕 전승(全昇)〔영평군(寧平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충공(文忠公)이다.〕 전참(全旵)〔벼슬이 시중(侍中)이었다.〕 전조의 아들 전익(全翊)〔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제학(提學)이었다.〕 전익의 아우 전여(全呂)〔벼슬이 정당 문학(政堂文學)이었고, 도평군(兜平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강숙공(康肅公)이다.〕 전익의 아들 전영좌(全永佐)〔벼슬이 전라 감사(全羅監司)이었다.〕 전영좌의 7세손 전상의(全尙毅)〔무과 출신으로 벼슬이 부사(府使)였으며, 서원(書院)에 배향되었다.〕 전여의 손자 전문식(全文軾)〔벼슬이 형조 판서(刑曹判書)이었으며, 시호는 문평공(文平公)이다.〕 전승의 아들 전신(全信)〔벼슬이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使)였으며, 시호는 문효공(文孝公)인데, 서원(書院)에 배향되었다.〕 전신의 아들 전희안(全希安)〔벼슬이 공부 상서(工部尙書)였다.〕 전문식의 9세손 전동흘(全東屹)〔무과 출신으로 벼슬이 훈련 대장(訓鍊大將)이었다.〕 전문식의 후손 전덕린(全德麟)〔벼슬이 판관(判官)이었으며, 서원(書院)에 배향되었다.〕

전근(全瑾)〔벼슬이 진도 군수(珍島郡守)였으며, 한 파(派)를 이루었다.〕

전부(全符)〔벼슬이 감찰(監察)이었으며, 한 파를 이루었다.〕

[출처]

국역 증보문헌비고

증보문헌비고 제51권 - 제계고(帝系考) 1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주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www.krpia.co.kr한국의 지식콘텐츠 KRpia내에 있는 질문답변 내용 요약 [전과웅]

질문요지

① 위에 나와 있는 번역문에는 『천안전씨 시조 전종도〔벼슬이 정승(政丞)이었다.]』라고 서술되었습니다.

 

② 증보문헌비고 원문 이미지에는 『천안전씨 시조 섭 [ 백제 시조 ○봉 환성군]』으로 나와 있음

 

③ 질문은 번역문이 1917년 일제에 의해 정정(수정)된 내용일 것으로 추측되므로 현재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역주한 번역문을 원문 이미지 파일대로 『천안전씨 시조 섭 [ 백제 시조 ○봉 환성군]』으로 바꾸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④ 답변은 2차례에 걸쳐서 신중하게 검토하여 한국의 지식콘텐츠 KRpia에서 답변하였습니다.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번역본은 원래 원문의 '정오표(正誤表)'를 기준으로 고치고 이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1908년(융희2년) 발간된 증보문헌비고 본문에는 『천안전씨 시조 섭 [ 백제 시조 ○봉 환성군]』으로 나와 있고 이를 검토한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되어 정오표로 『천안전씨 시조 전종도〔벼슬이 정승(政丞)이었다.]』으로 교정한 원본에 의한 것이라고 답변하였습니다.

 

⑤ ◆ 정선 전씨(旌善全氏)

『시조 전섭(全聶)〔십제 공신(十濟功臣)으로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 』의 번역문이 홍문관에서 찬집(纂輯) 교정(校正)한 원문에 근거한 것임을 답변하였다고 이해하였습니다.

 

 

Q&A

유형 오류신고 작성일 2011-12-24

제목 천안전씨 번역문이 원문이미지와 불일치

내용 오류위치 : [국역 증보문헌비고] 국역 증보문헌비고 > 번역문 > 증보문헌비고 제51권 - 제계고 12 > 부록 씨족 6 > 전씨 > 천안 전씨rn 제품명 : 국역 증보문헌비고rn원문이미지에 있는 것은 1908(융희2)년에 발간된 증보문헌비고 원본의 내용이고요, 번역문은 1917년 일제에 의해 정정(수정)된 증보문헌비고의 내용인 것 같습니다. 일제에 의해 증보문헌비고가 수정되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정본 번역문을 원본 번역문으로 바꿔주실 수 없는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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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내용

안녕하세요

KRpia 고객센터입니다.

몇 차례 전화통화로 확인한 바와 같이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번역본은 원래 원문을 '정오표(正誤表)'를 기준으로 고치고 이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KRpia에서 이를 제품 제작하는 과정에서 정오표 부분을 원문이미지에서 누락시켜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빠른 시일안에 정오표를 보완하여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다른 문의사항이나 궁금하신 사항 있으시면 아래 연락처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식서비스팀 허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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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내용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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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pia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KRpia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콘텐츠 『국역 증보문헌비고』은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번역본을 저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KRpia 고객센터에서는 고객님께서 지적해 주신대로 해당 번역문이 원문이미지와 다름을 확인하였으며,

바로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측에 번역본이 참고하고 있는 판본에 대해 문의한 상태입니다.

답변을 받는 대로 고객님께 즉각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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