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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건희, 위대한 선택
작성자 관리자 [2020-08-09 16: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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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와 시련의 순간, 이건희는 어떤 선택을 하였는가?

20년 만에 이류 기업을 초일류로 성장시킨 거인의 선택과 도전이건희 위대한 선택. 뜨거운 혁신가, 이건희는 어떤 선택을 했기에 지금의 삼성, 이류 기업을 초일류기업으로 경이로운 도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삼성전자에서 10년 이상 연구원으로 근무하였으며, 6시그마 전문가로 활동한 저자 지평길이 결정적인 순간에 남다른 선택을 했던 이건희의 선택에 주목하였다.

2부로 구성하여, 초일류 삼성전자를 만든 이건희를 위한 선택, 이건희의 경영과 인생 그리고 도약을 살펴본다. 집요하리만큼 날카로운 분석, 글로벌 환경에서 삼성이 어떻게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한복판에 서있는 이건희 회장의 탁월한 선택은 어떤 것이었는지 낱낱이 파헤쳐 알려준다.

 

목차

프롤로그역사에 남을 세계 초일류기업을 만들다


1부초일류 삼성전자를 만든 이건희의 위대한 선택
1장 이건희의 위대한 여섯 가지 선택

반도체- 반도체를 선택하다.

1983315일이병철 회장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공식 발표했다. 이병철 회장은 64K D램 기술 개발에 착수하겠다는 계획까지 내놓았다. 이병철 회장의 공식 선언이 있은 지9개월 후인 12164K D램의 생산과 조립, 검사까지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공식적인 반도체 진출을 선언한지 1년도 안 되어 삼성전자는 전 세계 반도체 업계를 충격에 빠뜨리는 발표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수십 년 이상의 기술 격차가 사실상 존재했던 반도체 업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1년도 안 된 무명의 삼성전자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램을 개발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세계를 또 한 전 ㄴ놀라게 했다. 19843월 말,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총 장비 2천여 대에 연인원 26만 명이 투입돼 쉬지 않고 밀어붙인 대역사였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일본 업계를 따돌리고 199310월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1우ㅏ 회사로 등극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이건희 회장의 위대한 선택, 과감한 도전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2. 디지털 - 디지털화를 선택하다

199911월 창립30주년 때 디지털 사업 구조 체제인 디지털 컨버전스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였고, 2000년에는 그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디지털 혁신 원년으로 정하고 디지털 혁신의 시동을 걸었다.

이때 삼성은 ‘Digital e-Company’로의 전환을 통해 아날로그식 사업구조에서 디지털식 사업 구조의 혁명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야심찬 선언을 했다.

일본 언론들은 2004삼성 10조 순익충격, ‘일본 전자업계 상위 10개사의 순익을 합한 것보다도 2배 많아 등의 자극적인 보도를 내 보낼 정도로 삼성의 도약에 경이로움을 표시했다.

이러한 삼성의 저력은 결국 남들보다 한발 앞서서 디지털 시대를 내다보고 준비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디지털 혁신은 지금의 삼성이 가능할 수 있게 해준 토대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디지털 혁명에 성공한 삼성은 2004년 말 국내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순이익 100억 달러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시대적 변화 속에서 그것을 기회로 삼아 수익 창출의 기회로 삼는 경영자는 흔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건희 회장은 기회를 찾을 줄 알고, 기회를 선점할 줄 아는 그런 흔치 않은 경영자들 중의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급성장한 배경을 보면 그 어떤 기업보다도 더 디지털로의 전환에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추어서 성공적으로 전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의 전략대로 아날로그에서는 이류 기업이었지만, 디지털에서는 일류 기업으로 재창조되었던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에서는 경험과 기술이 중요한 경쟁 요소였다. 이 점에서 일본 기업들을 후발 업체였던 삼성전자는 도저히 따라 갈 수 없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경험과 기술보다 오히려 혁신과 속도가 더 중요한 경쟁 요소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일본 기업들의 가장 큰 경쟁력인 아날로그 시대를 토대로 한 경험과 기술력이 오히려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디지털 시장에서는 그들에게 독이 되어 주는 현상도 발생했다.
이러한 시대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통찰한 이건희 회장의 전략 경영 덕분에 삼성전자는 일본의 소니가 아날로그TV에 집중할 때 한발 앞서 먼저 디지털TV 사업에 승부수를 띄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지난 2006년 일본의 자존심인 소니를 넘어 세계 TV시장 1위에 오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3. 디자인 - 디자인을 선택하다

이건희 회장은 1996년 신년사에서 철학과 혼이 깃든 삼성 고유의 디자인 개발에 그룹의 역량을 총 집결해 나가자며 디자인 혁명의 해1996년을 정하면서 그 해를 디자인 경영의 원년으로 삼았다.

1993년부터 임직원들에게 디자인은 단순히 스타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경쟁요소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왔다. 그래서 1995년에 국내 최고의 디자인 학교인 SADI를 설립하고, 2년 전에는 디자인 산악 연대 프로그램인 디자인 멤버십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건희 회장은 디자인 경영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해 1997자랑스러운 삼성인상에 디자인 부문을 추가했다.

1996년부터 2010년까지 IDEA, if 등 세계적인 권위의 띠자인상을 무려 502회나 삼성전자는 수상했다.

삼성전자는 2012년에 IDEA에서만 최다수상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뿐만 아니라 9년간 누적수상 1위를 기록하면서 세계적인 수준의 디자인 선도 기업임을 과시했다.

디자인에 대해 남들보다 먼저 시대를 앞서 내다보고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 이건희 회장의 위대한 선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삼성전자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삼성전자는 디자인의 기업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권위의 디자인상을 휩쓸기 시작했던 것이다.
1996년부터 2010년까지 IDEA, iF 등 세계적인 권위의 디자인상을 무려 502회나 삼성전자는 수상했다.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삼성전자는 2012년에 IDEA에서만 최다수상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뿐만 아니라 9년간 누적수상 1위를 기록하면서 세계적인 수준의 디자인 선도 기업임을 과시했다.
이건희 회장의 디자인 경영의 성과는 휴대폰, TV 분야에서도 고르게 빛이 났다. 휴대폰 분야에서 가장 먼저 디자인 경영의 성과가 난 것은 SGH-T100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직접 개발하기도 했던 ‘SGH-T100’이란 제품은 이건희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이 제품의 기획 단계부터 시작해서 디자인, 개발 단계까지 이건희 회장이 꼼꼼히 디자인을 챙겼기 때문이다.
이 당시 휴대폰들은 모두 각이 져 있고 반듯했다. 하지만 이 폰은 달랐다. 마치 둥근 달걀이나 공을 잡는 것처럼 잡았을 때 느낌이 달랐고, LCD 화면이나 키가 넓어서 사용하고 보기에도 매우 인체공학적이면서도 시대를 앞서나간 그러한 디자인이었다.

 

4. 휴대폰 - 휴대폰을 선택하다

삼성전자가 휴대폰을 독자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1986년 부터였다.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주문과 지시로 인해, 삼성전자는 휴대폰 기술력에서 십 년 이상 격차가 나던 모토로라를 넘어서고 1995년부터 국내 1위 휴대폰 회사가 되었고, 2012년이 되면서 14년 동안 독보적인 글로벌 자리를 지켜낸 핀란드의 거대 공룡 기업 노키아를 넘어서면서 글로벌 1위의 자리에 올랐다.

 

 

5. LCD - LCD를 재배치하다
디스플레이서치에서 199810인치 이상 대형 LCD세계 점유율 1위 업체가 삼성이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그 후 삼성은 더욱 더 노력하여 결국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LCD 패널ㄹ 시장에서 2002년부터 8년 연속 시장점유를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뿐만 아니라 2004년 세계 최초로 46인치 LCD TV를 시판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6. 스포츠 - 스포츠를 선택하다

1996년은 이건희 회장이 IOC 위원으로 선출되었던 해이다. 그리고 그는 올림픽을 기업 이미지 부상의 장으로 삼았던 여러 선진들 기업들, 특히 코카콜라 IBM, 모토롤라 등의 사례를 잘 알고 있었고, 임직원들에게 올림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삼성정자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지금처럼 글로벌 톱 10 기업으로 도달할 수 있게 되었던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올림픽 파트너라는 스포츠 마케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장 이건희의 위대한 다섯 가지 혁명
1. 경영 혁명 신 경영선언으로 개혁에 도전하다

‘199367이건희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켄벤스키 호텔에 모인 삼성 경영진에게 신 경영선언을 하고, ‘질 경영에 대한 그의 경영철학을 설파했다. ‘나부터 변하자’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 ‘양을 버리고 질 위주로 가자는 취지의 이 신 경영선언은 삼성 조직 전체에 대한 대폭적 수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세계무대에서 삼성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눈으로 보여주면서 장정500시간에 걸쳐 삼성이 가야할 비전을 직접 설파하였다.

해외 간담회를 통해 1,800명과 350시간 대화했고, 사장단과는 800시간에 걸쳐 토의했다. 저녁 8시에 시작한 간담회가 이튿날 새벽 2시까지 계속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결국 임직원들과 마음과 근본적인 의식 구조에서 변화가 생겼던 것이다.

 

 

2. 인재 혁명 - 기업은 사람을 키우고 사람은 기업을 키운다.

임직원들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평범한 인재가 비범한 인재로 도약을 경험하고, 국내적인 인재가 국제적인 인재로 거듭나게 되는 곳이 바로 삼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삼성이 이토록 인재 교육과 훈련에 남다른 투자를 하고, 훌륭한 교육시스템을 잘 구축해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삼성의 창시자인 이병철 회장과 후계자인 이건희 회장의 특별한 인재 사랑과 철학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은 사람이다.’

이건희 회장은 인재를 중요시했다. 그리고 그것은 선친인 이병철 회장의 탁월한 인재 제일 주위라는 철학에서 비롯되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삼성에서 2대를 이어져 내려오는 변함없는 경영 철학의 뿌리는 인재 제일이라는 것이다.
인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다.’라는 것이 삼성의 신념이자 이건희 회장의 철학이다. 그래서 삼성은 그 어떤 기업보다도 더 많은 교육을 시키는 회사이다.
사장보다 두세 배 더 많은 연봉을 받을 만한 핵심 인재를 영입하라.’

삼성의 성공DNA 다섯 가지는 인재제일(人才第一), 변화선도(變化先導), 최고지향(最高指向), 정도경영(正導經營), 상생추구(相生追求)이다. 이 중에서 인재제일의 핵심 가치는 바로 삼성의 인재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가치인 것이다.

기업은 사람을 키우고, 그 사람은 기업을 키운다는 말을 가장 ᄌᆞᆯ 실천하고 있는 기업이 바로 삼성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이러한 것들이다.

 

 

3. 의식 혁명 - 의식 변화로 초일류기업 문화에 도전하다.

남을 앞설 수 있는 탁월함, 즉 엑설런스(Excellence=탁월한, 뛰어남)가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엑설런스를 자신의 삶의 하나로 만들 수 있기 위해서는 네 가지 측면에서 상대방이 생각하는 것, 즉 의식하는 것이 앞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 네 가지는 똑똑함을 믿기보다 섬세하게 행동하는 것’, ‘안전함을 추구하기보다 리스크에 도전하는 것’, ‘현실을 넘어 이상을 꿈꾸는 것’, ‘가능한 수준을 넘어 목표치를 높이는 것이다.

 

4. 글로벌 혁명 - 반도체로 글로벌 회사에 도전하다.

삼성전자가 초일류 전자회사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되어준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반도체사업이었다. 그것은 반도체야말로 모든 기회와 성공이 국내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고자 하는 기업만이 품을 수 있는 거대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가 미래의 삼성과 한국을 먹여 살릴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확신 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확신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에는 미래는 글로벌 시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생각과 선택은 남들의 시갓과 달라도 한참 달랐다. 그의 남다른 혜안은 우리가 반도체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아닌 정반대로 우리가 반도체를 해야만 하는 이유에 더 초점을 있었던 것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바로 그 반도체를 시작했다. 1974102월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던 것이다. 그렇게 인수한 한국반도체가 놀라운 성장을 하여 3년 만에 흑백TV용 트랜지스터를 만들어 내고, 또 다시 3년 만에 칼라TV용 집적회로를 만들어내는 쾌거를 보여주었다.

1983년에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자마다 바로 그 해인 10983년에 64K D램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낼 수 있었다.
기업이 실패하는 최대 원인은 결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건희 회장은 이대로 가다가는 삼성이 망할 것이라는 것을 느끼자마자 결단을 했다. 삼성과 한국에 반도체와 같은 고부가가치 사업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고, 앞으로는 이러한 고부가가치 사업을 하지 않고서는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는 결단을 했고, 실천했다. 이것이 이건희 회장의 위대함이다.

하지만 늦지 않게 결단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건희 회장은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5. 제품 혁명 - 품질과 디자인 위주로 제품을 혁명하다.

1990년 초 불량 휴대폰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이건희 회장은 정정당당하게 정면 승부를 하기로 결단했다. 그것이 바로 휴대폰 화영식이다. 각 사장단을 불러 모으고 500억 원이나 되는 휴대폰을 불태워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임직원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사건이었다. 특히 품질 경영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확고한 의지를 확실하게 임직원들이 느낄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양() 위주로 운영 되 왔던 삼성의 경영 방식을 질() 중신으로 완전히 바꾸는 일대 전환점이 된 것이다.
특히 이건희 회장의 성공적인 경영전략 중에 하나로 품질 우성 경영을 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알 수 있다.

이건희는 46세 때 창업자이자 아버지인 이별철로부터 삼성그룹의 경영을 이어받았다. 그 이후 삼성그룹의 약진은 눈부시다. 이건희의 최대의 공적은 한국ㅇ의 삼류 제조업체였던 삼성을 세계 톱의 기업으로 육성시킨 것이다.

그가 내세운 경영전략을 보면 전략 레벨로는 2창업,’ ‘신경영,’ ‘품질 우선 경영,’ ‘준비경영,’‘첨단 경영,’‘등이 있다.

 

 

 

2부 이건희의 경영과 인생, 그리고 도약
3장 이건희의 다섯 개의 경영
1. 준비 경영 - 디지털과 국제화 시대를 준비하라.

이건희 회장은 회장 취임 30년 만에 300배 성장이라는 경이로운 성장을 이룩해 낸 것이다. 조직의 큰 변화를 이글

끌어내고, 초일류기업으로의 도약이라는 담대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준비 경영을 실천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단기간에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게 만든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만할 정도의 높은 목표초일류기업으로의 도약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조직과 사람을 혁신시키면서 준비를 해 나갔기 때문이다.

199367일에 그의 준비 경영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의 핵심 경영진 200여 명을 긴급 호출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이른바 신 경영을 주장했고, 그것은 바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준비 경영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최대 장수 기업인 GE의 밥 코코란 짹 윌치센터의 연수원장은 지역전문가제도에 대해서 삼성 성공비결의 핵심은 10년 후를 내다보고 직원 한 명당 수억 원을 투자하는 지역전문가제도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 계획 경영 - 새로운 물결을 정확하게 예측하라.

이건희 회장의 준비 경영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계획경영이었다.

계획 경영이란 미리 미래를 내다보고 예측하여 어떤 분야가 가장 큰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는가에 대한 선견지명을 통해 미리 선점하는 경영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전에 삼성전자에게 앞으로 휴대폰이 개인에게 휴대 피ㄹ수품이 될 것이기 때문에 휴대전화 사업에 집중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이건희 회장은 휴대폰 시대가 열리는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 본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신 경영선언 후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의 강화를 지시했다.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합니다.’

그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그의 선견지명 덕분에 휴대폰 업계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세계 최고의 휴대폰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잘 닦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건희 회장은 정확히 10년 뒤의 미래를 내다보았다.

만약에 그의 계획 경영이 없었다면, 반도체를 그가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삼성전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위대한 선택이 빛을 발하는 첫 번째 사업이 바로 반도체 사업이었던 것이다.

1992미국 반도체의 20년 패권일본 반도체의 15년아성을 잠재우고 세계 반도체 1위에 올랐다.


3. 공격 경영 -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공격하라.
생각할 시간이 없다. 현재 맡은 것을 빨리 정산궤도에 올리고, 뒤고, 제대로 된 물건을 세계 시장에 내서 그걸 1등으로 만들어야 한다.”

 

4. 변화 경영 -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고 변화하라.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2010324일 경영 복귀를 하면서 내놓은 일성이다. 이처럼 이건희 회장은 항상 위기를 강조해 왔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항상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왔다. 그리고 그의 위기론은 조금 더 적극적인 극복을 요구했다.

그것은 위기를 극복하는ㄴ 수준에서 머물지 말고 위기를 통해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성장해 나가자는 것이 그의 위기론의 본질인 것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연()은 더 높게 뜰 수 있다.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불황을 체질강화의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그는 2010년 경영에 복귀하면서 출근 시간을 4시간이나 앞당겨진 오전 630분이라고 한다.

그의 이러한 변화 경영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그룹의 핵심부서 및 핵심임원의 오전 6시 출근 관행으로 이어졌다. 이 회장의 성도적인 조기출근이 삼성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새벽 일직 흔들어 깨운 셈이다.

그의 변화 경영은 결국 삼성전자로 하여금 분기에 8조원 이상의 영업 이익을 올리는 등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게 해 주었다.

 

오늘과 다른 내일은 반드시 오기 때문에, 모든 조직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렇다면 변화를 추구하고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즉 변화 경영을 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이건희 회장은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낸 경영자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경제적 활동에는 위험이 동반한다. 그러나 어제를 지키는 것, 즉 혁신을 하지 않는 쪽이 내일을 만드는 것보다도 더 큰 위험을 동반한다.’라고 피터 드러커가 혁신과 기업가정신이란 책에서 피력한 것처럼 변화를 추구하고,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기업이 언제나 더 큰 위험 속에 빠질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꾸준히 변화를 임직원들에게 주문했다. 그리고 그것은 삼성이 나태해지지 않고 지속 성장을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기업이야말로 기존의 조직이 몰락하는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경영 키워드 - 지금의 삼성전자를 만든 위대한 다섯 가지 경영 키워드

그의 놀라운 다섯 가지 위대한 경영 키워드인 준비경영’, ‘계획 경영’, ‘공격 경영,’ ‘변화 경영,’ ‘전략 경영은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기업과 개인이 명심해야 하고 배워야 할 경영 키워드가 될 것이다.

준비 경영 : 지역전문가제도를 통해 벌써 이심여 년 전에 국제화 시대를 준비하여 현재의 글로벌 마케팅 최강 기업의 초석을 다졌을 분만 아니라 품질과 디자인이 미래 사회에 주요한 요소가 될 것을 짐작학고 준비했다.

계획 경영 : 반도체와 휴대폰의 새로운 미래의 물결에 대해 누구보다 빨리 선견지명을 통해 정확하게 예측함으로써 다른 기업들보다 먼저 반도체를 과감하게 시작하여 선점할 수 있었고, 휴대폰 신화를 일구어 낼 수 있었다.

공격경영 : 16개월이 통상 걸리는 반도체 공장을 6개월 만에 건설하게 했고, 통상 1년이 걸리는 스마트폰 개발을 3개월 만에 만들어 낼 수 있게 하고,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다.

변화 경영 : 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위기의식을 강조하면서 변화를 주문했고, 그 결과 위기를 만날 때마다 그 위기를 도약의 또 다른 발판과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 삼성전자를 강한 체질의 조직, 투명하고 공정한 조직,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기업 문화를 가진 조직, 일등의 식을 가지고 있는 ㅊ초일류 조직으로 끊임없이 변화 시켰다.

전략경영 : 잘 나갈 때 자만하지 않고, 오히려 10년 후의 신수종 사업을 발굴하고, 그 사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을 꾸준히 세웠기 때문에, 반도체를 제패하고, LCDTV를 제패하고, 스마트폰에서도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이다.

 

 

4장 이건희의 일곱 가지 인생
1. 출생 - 삼남으로 태어난 이건희

1942년 대구에서 이병철과 박두울 사이에서 셋째로 태어났다. 위로 형 맹희와 창희가 있다.
1967년 평생의 동반자가 될 홍라희와 약혼을 하고 그녀가 대학교를 졸업한 뒤인 430일에 결혼을 했다.

 

 

2. 성장 -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한 이건희
3. 적성 - 사업에는 적성이 맞지 않는 이건희
4. 압박 - 도망가지 않고 후계자의 운명을 받아들이다.

1973년 이병철은 큰아들 이맹희에게 다 잘 할 수 없으면 잘 할 수 있는 것만 하라는 말을 했다. 이것은 삼성의 후계자가 반드시 장남인 이맹희 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는 말이기도 했다.

이별철의 말대로 19769월 이병철은 일본으로 폐암 수술을 받으러 가기전날 밤 가족들을 불러 모아 폭탄선언을 했다.

앞으로 삼성은 건희가 이끌어가도록 하겠다.”

가족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였고, 특히 장남 이맹희는 그 충격이 누구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이날 밤에 이건희는 다행히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다.

도쿄 암연구 센터에서 성공적으로 위암 수술을 마친 이병철은 그 다음 해인 19778, 공식적으로 이건희가 삼성의 후계자임을 밝혔다.

드디어 이건희는 1979229, 쟁쟁한 형들을 제치고 삼성의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경적인 혹독한 경영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1987년까지 이어졌다.

 

 

5. 실패 - 여러 가지 도전에서 실패를 거듭하다

이건희는 46세의 젊은 나이에 삼성그룹의 총수가 되었다. 1987121, 호암아트홀에서 삼성그룹 신임 회장의 취임식이 있었다. 삼성사장단 및 임원 전원과 사원 대표에 이르는 1,300여 명에 이르는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건희는 이병철의 3남이었지만, 두 형들을 제치고 삼성그룹의 회장으로 취임을 하게 되었다.

삼성의 후계자로 지명을 받은 후 거의 15년이란 오랜 기간을 그는 견디어 내고서야 비로소 삼성의 회장으로 취임을 할 수 있었다.

 

5장 이건희의 위대한 다섯 가지 도약


1. 초일류기업 - 이류 기업을 초일류기업으로211
2. 글로벌 CSR 기업 - 상생을 추구하는 글

삼성전자는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삼성전자가 자발적으로 지역 사회와 인류에 공헌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제도를 정착시키고 다양한 활동과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실천에 있어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는 유수 기업들과 비교하면 갈길이 멀지만, ‘자선활동수준에 머물러 있는 대다수의 국내 대기업과 비교하면 CSR 부문에서도 삼성은 한발 앞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는 ‘CSR 3.0’이란 개념을 내세우며 스마트 역량을 기반으로 한 사회공헌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나가면서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사회공헌활동을 추구하고 있다. CSR 3.0은 기업의 자선활동이라는 좁은 의미의 CSR을 벗어나 사회공헌을 일종의 경영 전략으로 여기는 혁신적 사회공헌활동에 한발 앞선 신개념을 접목시켜 삼성전자가 추진해 나가는 사회공헌활동이다.
이건희 회장의 지론은 기업은 절대 사회를 떠나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기업과 사회는 물과 물고기의 관계처럼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지론에 따라 삼성은 지역 사회와 함께 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3. 관리의 삼성을 창조을 삼성으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대한 경영자는 잭 웰치이다. 그는 1960년에 입사해서 21년 만에 제너럴일렉트리(EG)의 최연소 경영자가 되었다.

퇴임까지 경영의 달인’ ‘세계의 경영인등 많은 별칭으로 불리며 1,700여건의 기업 인수 합병을 성사시킨 미국의 기업인이다.

미국에 잭 웰ㅊ치와 같은 경영자가 있다면, 한국에는 이건희 회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경영 성과로 비교해 보면 이건희 회장이 더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잭 웰ㅊ치는 20년 동안 40배 성장을 했지만, 이건희 회장은 30년 동안 300배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4. 관료주의에서 일류 기업 문화로

5. 창의, 초일류, 상생의 성공 DNA

1969년 겨우 직원 36명으로 시작된 삼성전자란 자그마한 전자회사가 오랜 세월을 버티고 괄목상대(刮目相對)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성공과 발전을 했다

100년 기업 삼성을 위해 성공 DNA는 창의, 초일류, 상생이라는 DNA이다. 이제 삼성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위대한 기업으로 기억되기 위해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며, 그 도약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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