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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래산업 : 정문술 사장
작성자 관리자 [2020-04-12 17: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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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산업 : 정문술 사장

 

 

1938년생 원광대 종교철학과 졸업 종교: 기독교 독서량: 월평균5

감명 깊게 읽은 책: 폴 마이어의<베풂의 기술>

좌우명: 미래지향

성공비결: 투철한 기업가 정신. 기술개발. 벤처정신. 신뢰경영. 인재육성

 

19832월 부천에다 조그마한 공장하나를 전세 3,000만원으로 그리고 연마기, 프레스 절단기, 몇 가지 측정기구 등 아주 기본적인 장비들을 구입하여 총 자본금 8천만 원에 여섯명이 회사를 시작했다.

창업10만에 지긋지긋한 셋방살이에서 벗어나 꽃나무들이 꾸며진 실내정원, 깨끗한 구내식당, 기능적인 생산라인, 각종운동시설 등이 있는 새로운 공장을 만들고 온 직원가족모두를 이끌고 말이다.

그때(1994년도)에 미래산업은 부천에서 천안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 직원이 137명이었는데 한사람만 안 따라가고 모두 함께 갔다는 것이다. 그 한사람은 4대 독자였다. 모친이 하루라도 아들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우기는 탓에 별 수 없이 이사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직원들에게 잘 해주었느냐는 자세히 말 안 해도 이해가 갈 것이다.

19969월 우리사주 79천주를 270명의 직원들에게 주당 4만원씩 사게 해주었다. 경력에 따라서 200주에서 1천주까지 배당해 주었다. 당시 주가가 30만원을 넘게 오르내렸으니 그 차액이 엄청나다. 정확히 계산해 보면 270명중 200명이 억대 부자가 된 샘이다. 관리과에 근무하는 여직원의 경우 730주를 받았으니 시가로 환산하면 27천만 원이 된다. 구내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도 억대 부자가 되었다. 이른바 황제주’, ‘귀족주라는 것이다.

그가 회사를 시작한 것은 공직에서 18년 있다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으면서 43세에 나이에 전혀 잘 알지도 못하는 반도체 검사장비 회사(미래산업)를 한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금형 공장에 들어가 퇴직금을 전부를 잃고서 새로 시작한 것이 반도체 검사장비를 만드는 것이었다.

1997년 능률협회, ‘97년과 ’982년 연속 대신경제연구소 선정 최우량 상장기업이 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1994년에 그는 충남기업인 대상을 수상했다. 그때에 회사에 비상이 걸렸다. 대통령이 회사에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이라 무슨 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사장실이라야 책상 하나 덜렁 놓여 있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는 항상 정직하고 낙관주의로 일해왔다. 대통령이 별건가. 물으면 아는 대로 대답하고, 칭찬하면 인사하고, 때 되면 구내식당에서 식사대접이나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준비하긴 뭘 준비해. 청소나 깨끗하게 하자구.”

직원들은 황당한 표정들이었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쪽보다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실 사람들이 더 난리였다. 방문 이틀 전 비서실과 경호원 실에서 사람들이 와서 공장을 일일이 점검하고 사장실까지 들어왔다. 와서 사장님 건물이 아주 멋있습니다.” 그러면서 사장실이 어디냐고 묻는 것 이였다. 여기가 사장실이라니까 그들은 놀랐다. 소파는커녕 제대로 된 의자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정 사장은 너무도 검소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방문에서는 다행히 별 탈이 없었다. 정사장의 안내에 따라 공장을 한 번 둘러보고는 사장실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가면서 일본기업을 이기고 있는 미래산업을 대견스럽다고 칭찬했다.

미래산업은 직원들에게 봉급을 많이 준다. 연구원은 대기업의 연구원과 비교하고, 일반직원은 대기업 전자회사 직원과 비교해서 그보다 약간 높게 책정한다. 보너스 년800%를 지급한다. 800%는 다른 회사의 것과 다르다. 다른 회사의 보너스란 개념은 보통 본봉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미래산업의 보너스는 항상 총 수령 액을 기준으로 한다.

연구직의 과장급 이상은 회사에서 승용차를 지급한다. 미혼직은 기숙사에서 묵을 수 있게 하고 기혼자는 주택자금으로 3천만 원을 무이자로 대출해준다. 대학까지의 자녀 교육비는 전액을 회사가 부담한다. 직계가족과 장인, 장모의 병원비까지 모두 회사 차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경리부 직원이 젊은 친구 하나를 데리고 정 사장을 찾아왔다. 무슨 영문인지 두 사람 모두 여간 격양된 얼굴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까 이 사람이 금이빨을 하겠다는 겁니다, 글세.” “대체 무슨 소린가.” “충치가 있어서 금이빨을 해야 하니까 의료 지원금을 내놓으라는 겁니다.”

참으로 알쏭달쏭한 문제였다. 직원들의 직계가족까지 치료비를 전액 지원해준다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었다. 그렇지만 금이빨까지 회사에서 해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여직원이 이 봐요, 금이빨에 의료보험 되는 것 봤습니까.” “아니 그럼, 뽑기만 하고 해 넣지는 말라는 얘깁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정 사장은 그냥 해줘. 금이빨 해 넣고 번쩍번쩍 일 좀 잘하라구.” 정 사장은 참으로 직원을 가족같이 여기는 사람이다.

 

그는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용기와 열정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 정문술도 꼭 마흔셋에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힘드시겠지만 부디 꾹 참고 이겨내십시오.’라고 한다.

그러나 시작한 사업은 그렇게 순조롭게만 된 것은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부채는 늘어가고 생각대로 그리 쉽지는 않았다.

세월은 벌써 오십이 넘고 아내에게는 제대로 된 월급이란 것을 한 번도 주지 못했으니 아내의 고생은 특히 극심했다.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의 학비마저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도시락 반찬을 마련하는 것이 매일 아침마다의 커다란 근심이었다. 집안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오르지 기술개발에만 전념했다. 그런데 개발한 기계는 결함이 너무도 많았다. 그는 지금도 그때. 같이 고생한 직원 백정규가 그에게 했던 한마디를 잊지 못한다. “제가 사장님 전 재산을 날렸습니다.”

정말로 눈앞이 캄캄하였다고 한다. 오르지 죽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렇게들 자살을 하는 구나 싶었다. 뒤 늦께 뛰어든 사업이 실패하고 결국 자살을 택했던 해직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의 선택을 내가 얼마나 비웃었던가.

자금문제로 내가 한참 힘들었을 무렵, 한번은 둘째딸이 자기와 함께 교회에 나가자고 했다. 매일같이 한숨만 쉬고 있는 아버지가 아무래도 안 돼 보였던 모양이었다. 당시 마음도 심난하고 해서 못 이기는 척 따라 나섰다. 그 날 처음 들었던 목사님 설교내용이 바로 욥의 고난이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을 주신 것은 그의 죄에 대한 징벌이 아니라 그를 지금보다 더욱 순수하게 단련시키기 위한 은사였다는 목사님 말씀을 듣고 그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 그는 열심히 교회에 나갔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힘을 얻어 힘든 하루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너무 어려워 견디기 힘들 때는 오히려 하나님을 저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새벽 그는 아내와 술을 마시다가 여보, 죽읍시다. 아무래도 방법이 없어.” 의외로 아내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들어서 안 소리지만 그 다음날 아내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더 끔직한 일은 아이들 모두가 그 말에 동의를 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는 그때부터 죽을 궁리를 시작했다 아이들만 남겨둘 수도 없으니 일가족 동반자살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 무렵 TV를 보다가, 강원도 어디쯤에서 승용차를 타고 가던 일가족이 벼랑에서 떨어져 몰살했다는 뉴스가보도가 있었다. 나에게는 포니 한 대가 있었다. 식구는 많고 차는 작아서 문제가 좀 있겠지만 한 가족이 자살하기에는 그 방법이 가장 그럴 듯하다고 여겨졌다. 안에서 문을 잠그고 물에 빠지면 틀림없이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물속에서 고통스러워할 아이들을 상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청산가리였다. 아내의 먼 친척 되는 양반이 전 재산을 탕진하고 청산가리로 일가족 동반자살을 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산가리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아 방도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죽을 마음까지는 없었던가 보다. 우습게도 죽지 못할 이유가 참 많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수면제를 모아보기로 작정했다. 당시 서초동 우성아파트 단지 내 약국하나가 있었고 주변에 두어 군데 있었다. 수면제를 달라고 하면 내주는 것이 고작 서너 알이 채 안되었다. 근 한 달간을 한 병을 모았다. 일곱 식구가 죽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양이었다.

별수 없이 나 혼자라도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소주 한 병과 수면제를 챙겨들고 청계산을 올랐다. 정상에 오라와 보니 강남 일대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였다. 비정한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었다. 어째서 나 혼자만 이렇게 비참해야 하는 건지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갑자기 무너져 내려서 모두가 같이 죽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전쟁이라도 나서 모든 것이 불타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소주병과 약병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두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 한쪽에서 설명할 수 없는 희망 같은 것이 피어나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나를 믿고 도와줬던 사람들은 뭐가 되게되는가. 내 가족들은 또 뭐가 되는가. 무작정 살다보면 항상 어떻게든 길이 생겨나지 않던가. 이런 생각들이 갑자기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대로 실패한 인생으로 마감하긴 싫었다. 잃었던 오기가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때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깨달음이 있었다. 무조건 잃어버린 것만은 아니다. 실패는 했지만 아직 기술은 남아 있지 않은가. 기계설계, 전자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제어계측, 진동, 소음제거, 정밀온도제어, 현미경 연동제어, 색채식별, 정밀위치제어, 특수모터제어, 에어 베아링, 정밀기계 분야 등등에 관한 기술력만큼은 국내 최고라 할 만했다.

자그마치 4년 동안 18억을 쏟아 부어 가며 축척한 기술을 이대로 흩어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웨이퍼 검사장비가 아니더라도 한 단계 낮은 제품을 개발해서 파 수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는 산 아래를 향해서 있는 힘껏 약병을 던져버리고 사무실로 왔다. 사무실에 도착해보니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직원들이 짐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는 거야! 우리가 망하기라도 했냐! 얼른 짐들 못 풀어!”

근 한달 만에 나타난 사장치고는 목소리가 좀 컸던 모양이었다. 직원들은 모두 눈이 동그랗게 뜨고 그를 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는 다시 도전하여 성공하게된 것이다.

미래산업은 사훈도 없고 특별히 부르짖는 운동동도 없다. 또한 회의도 별로 없다. 그저 믿고 편안하게 맡기고 일하는 회사다. 1992년도 매출액이 30억 원이었고, 3년 후인 1995년도 매출액은 318억 원, 1996년도에는 454, 1997년에는 6152,300만원이었다.

 

미래산업은 직원 수 300, 그중 삼분지 일이 연구원이다. 그중 10명이 핵심 엔지니어가 이끌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명의 핵심 엔지니어들 중에는 공고출신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있다. 그들 밑에서 공학박사며 석사들이 일하고 있다. 미래산업에서 학벌은 별로 의미가 없다. ‘누가 더 훌륭한 엔지니어인가만이 중요하다. 그래서 리더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그는 직원들에게 하루 일과를 스스로의 계획과 판단 속에서 시작하기를 권한다. 무엇을 해도 좋으니 재미있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미래산업에서는 총매출액의 1%를 교육비로 지출한다.

 

미래산업에서는 사내 네트워크를 통해서 누구라도 재무구조를 열람할 수 있다. 자기가 벌어들인 돈들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고 싶으면 얼마든지 살펴볼 수 있다. 이렇게 서로를 공개하고, 그만큼 서로를 믿으며 일하는 회사이다.

 

그는 단 한푼도 회사 돈을 마음대로 쓰지 않는다. 그가 회사로부터 가져갈 수 있는 돈은 월급뿐이다. 회사 돈은 철저하게 기술개발과 직원복지에 쓰인다. 로비를 하지 않으니 비밀장부 같은 것도 없다. 탈세하는 재주도 없다. 그러니 피차간에 의심할 건덕지가 없다. 서로 마음놓고 믿을 수가 있게 된다. ‘필요한 만큼 가져다 써라고 기실 그 규모가 대수롭지 않다. 사전 결재만 받을 뿐, 적절한 지출규모를 입안자 스스로가 최적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달라는 대로 주라는 배짱도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산업에는 소위 으로 들어온 사람이 없다. 사장이나 간부의 친인척 고용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다. 5남매를 두었으나 회사에 자리는 고사하고 회사를 보여준 적이 없다고 한다.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한 직원들은 얼마 안 되었다. 상사경조사에는 빠져도 부하의 경조사에는 안 빠지려는 것을 안 창업 때부터 그를 도왔던 몇몇 간부가 아들에 결혼식에 가서 아들을 몰라보았을 정도다.

 

그는 또 자녀교육에서 말하기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잡초처럼 키워야 된다고, 거칠게 풀어놓고 함부로 길러야 독립심 강하고, 건강하며, 생명력도 강한, 진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너무 일류만을 자식들에게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재수를 시킨 아이는 없다. 첫째 딸은 이대 건강교육학과를 졸업했고, 둘째 딸은 세종대학 성악과, 셋째 딸은 덕성여대 가정관리과를 졸업했다. 장남은 중앙대 기계공학과와 동 대학원을, 막내는 중앙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을 움직인 100인의 경영자책을 읽고서... J, Y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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