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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선 전씨 홍보 [ 강성회(江姓會) ]
작성자 관리자 [2020-02-04 21: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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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1. 15(수요일)에 강릉에 거주하는 20개 성씨들의 모임인 강성회(江姓會)가 강릉시 옥천동에 있는 청기와 한식당에서 열렸습니다.

 

 

전찬택 강릉향교 충효교육원장

 

 

 

전선집 강릉지구 종친회장

 

오늘은 정선 전씨가 유사(有司)이므로 문중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정선 전씨 강릉지구 종친회 전선집회장이 A4 5장 정도의 유인물로 전씨의 연원과 강릉 입향조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全氏淵源


 

백제개국공신 全聶 단소

 

全氏百濟開國命脈을 같이 한다. 백제 건국이 기원전 18년이니 前漢 成帝 鴻嘉 3癸卯年으로 시조는 백제개국공신 중의 한 분이신 歡城君 諱 이시다.

고구려 동명왕 주몽(朱蒙)北扶餘에서 난을 피하여 卒本扶餘로 왔는데 부여왕 연타발(延陀勃)은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 있었는데 둘째 딸을 그의 아내로 삼게 하였다. 그러다 부여왕이 죽자 사위인 주몽이 왕위를 계승하고 아들 둘을 낳았는데 장남은 비류(沸流), 차남은 온조(溫祚) 이다. 주몽이 북부여국에 있을 때 낳은 유리(琉璃)가 부왕인 주몽을 찾아오니 태자로 삼았다. 비류와 온조는 신변의 위험을 느끼게 되자 온조는 그의 형 비류와 全聶, 烏干, 馬黎, 乙音, 解婁, 仡干, 郭忠, 韓世奇, 范昌, 趙成등 열사람의 신하와 같이 남쪽으로 나려와 하남 위례성( 현재 서울 강동구 몽촌동 일대)都邑을 정하였다. 그러나 형인 비류는 미추홀(彌鄒忽;지금의 인천시 일원)에 나라를 세웠으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나라를 유지하기가 적당치 않아 나라를 폐하고 동생 온조에게 귀부하니 이때부터 나라 이름을 십제국(十濟國)에서 百濟國으로 개칭하였다. 이때 나라를 세운 功勳이 있는 十臣百濟開國功臣으로 策勳하고 始祖 全聶歡城君으로 하니 이때가 기원전 18년이다.

시조부터 7세 까지의 선조 묘는 실전되었고, 8세손인 이 신라 성덕왕22(서기723)당나라에서 大匡公主護從한 공으로 추부시랑에 오르고 旌善君에 책봉되어 정선에 采綠地를 하사하니 이때부터 정선으로 본관을 삼았다. 1919년 건립된 祠堂 瑞雲齋 경내에는 崇慕司와 비각 등이 있는데,  서운재 현판은 전병훈이 썼고, 1918년 의친왕 이강이 내린 액자, 영친왕 이은이 쓴 액자, 중국 양강총독 장인준의 건축기문, 호조참판 김문제의 상량문, 전용각의 중수기, 전세철의 신도비운반기, 전봉집의 신도 비각 건립 공로 표창기 등의 현판이 있고 정원에는 의친왕이 쓴 神道碑 碑閣 있다. 충남 연기군 전의면 碑岩寺址에서 1960년 발굴된 국보 제106호인 계유명전씨(癸酉銘全氏) 아미타불삼존비상(阿彌陀佛三尊 碑像)은 백제가 패망한 10년 후인 서기 673(문무왕 13)에 전씨가 중심이 되어 백제국왕 및 그 신료들의 영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만들었다는 사료에서 볼 수 있듯이 전씨가 백제 때의 豪族임을 알 수 있다. 현재 宗人 수는 남한에 65여만명, 해외에 10여만명, 북한에 25여만명 등 100여만명으로 추산된다(2015년 현재).

 

. 主要 派祖

 

1. 旌善派

 

 

 

정선전씨 중시조 全愃 묘소

 

貫祖전선(全愃)으로 신라 때 奉翊大夫 副知密直司事 典法判書를 지냈고 旌善君에 봉해져 정선을 貫鄕으로 삼았다. 始祖 全聶8世孫으로 사실상 전씨의 中始祖가 된다. 墓所는 현재 정선군 남면 낙동리 서운산 산120-7奉安되었고, 매년 음력 915時祭奉享한다

 

石陵君 派祖 全允藏(30세손)

 

 

석릉군 全允藏 단소


29세손 贊成事 桃源君 英甫의 자손이시다. 은 중국어에 능통하고 외교 수완이 뛰어나 서기 1340년 원나라에 사신으로 들어가 元帝를 설득하여 忠肅王復位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1342曺頔上護軍으로 江陵大君(후에 공민왕)護從한공으로 二等功臣策錄되고, 同知密直司事를 거쳐 僉議贊成事에 이르렀고 石陵君해 졌으며 恭愍王 門下侍中 平章事를 역임 함 (忠肅王,忠惠王,忠穆王,忠定王,恭愍王朝 封臣) 墓地開城市 松岳山에 있으나 전란으로 失傳되었으므로 桃源君石陵郡瑞雲山 設壇. (桃源旌善의 옛 地名)

 

採薇軒公 派祖 全五倫(29세손)

 

 

채미헌 全五倫 묘소


의 호는 채미헌(採薇軒). 대제학(大提學) 전분(全賁)의 아들이다. 고려 말에 고관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이성계 세력에 의해 고려가 패망하니, 고려 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켜 두문동으로 들어간 인물로서 유명하다(1334 ~1425).

1373(공민왕 22) 과거에 급제하였다. 1391(공양왕 3) 우상시(右常侍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형조판서(刑曹判書)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392(공양왕 4)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갔다가 조선 태조에 의하여 본향안치(本鄕安置)의 처벌을 받았다. 이때 본향 안치된 인물이 성석린(成石璘이윤굉(李允紘유혜손(柳惠孫안원(安瑗강회중(姜淮中신윤필(申允弼성석용(成石瑢정희(鄭熙) 등인데, 이들 중 성석린과 같이 조선 왕조에서 벼슬을 살았던 인물들도 있었다. 뒤에 풀려나서 서운산(瑞雲山, 강원도 정선 소재)에 은거하였다.

두문동 72인 중의 한 사람이며, 뒷날 경상남도 안의(安義)에 소재한 서산서원(西山書院)祭享 되었다. 全五倫 유고(遺稿)와 행적 관련 자료를 모아놓은 책이 채미헌실기(採薇軒實記)이다

 

臨河君 派祖 全應祖(41세손)

 

 

임하군 全應祖 단소

 

 

중종 임진년 93일생이고 禦侮大護軍이시다.

인종이 승하하고 명종이 경원대군으로 세자에 책봉 됐을 때 特除翊載東官(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림)하였지만, 을사사화를 피하여 남산동에 퇴거 하시고 선조 갑진에 追排純忠祚贊謀 翊聖功臣 正憲大夫 戶曹判書 臨河君하시다.

임자 97일 졸 하시니 묘는 楊州 美阿里. 配貞敬夫人 金海宋氏 라고 記錄되었어나 6.25 戰亂都市開發失墓가 되어 西紀 1990 10後孫들이意志를모아 光明市 老隱寺一洞 楸谷山37-3艮坐設壇 奉祀한다.

 

全龍(석릉군)(42세손)

 

 

석릉군  全龍  묘소

  

임진왜란(1593;선조 26)때 종묘의 위패를 무사히 옮긴 공으로 司僕寺主簿, (6)가 제수(除授)되었다. 후에 사복시판관(司僕寺判官, 5)이 제수(除授)되었고(1601;선조 34) 선조 38년에는 다시 內司僕寺內乘除授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의 공으로 忠勤貞亮 扈聖功臣 資憲大夫 刑曹判書에 책봉되었고 이후 石陵君 봉해졌으며, 다음 내용을 교서에 명시하였다.(인조3;1625)

 

(모습을 그려 후세에 전하며, 품계와 관작을 한 자급 초천한다.

그들의 부모와 처자도 한 자급 초천하되, 아들이 없으면 생질과 여서를 가계(加階)하라. 적장은 세습케 하여 녹봉을 잃지 않게 할 것이며, 대대로 영원히 사유를 받게 하라. 이 반당 4, 노비 7, 구사 2, 전지 60, 은자 5, 내구마 1필을 하사한다.)

 

정사공신(靖社功臣) 88인의 회맹록(會盟錄)에 올랐다.

死後 자헌대부(資憲大夫) 형조판서(刑曹判書)追贈되었다.

 

그 외 天安, 沃川, 龍宮, 羅州, 慶州, 城山, 竹山, 完山 18가 있다

 

 

 

 

. 江陵居住 旌善全氏 入鄕祖

 

入 江陵 조상을 살펴보면 得貫 18파 중에서 가장 먼저 始貫한 정선군 6개파 중 석릉군, 채미헌공, 임하군 후손들이 주류를 이루며, 그 외 상호군, 판서공, 복야공 후손은 극소수 임.

 

石陵君派

 

 

이조정랑 성취옹 仁權 단소

 

 

영모재

 

仁 權 (1360~1441)

40대손 通政大夫 吏曹正郞 醒醉翁 仁權이 고려 말엽에 강릉으로 낙향하여 여생을 편안하게 지내라고 경포호 남쪽 모안곡에 나라로부터 정자를 하사 받아 관심정(寬心亭)’이라 이름 짓고 노후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세월이 흘러가면서 寬心亭이라는 정자는 毁損되고 말았으나, 그 후 출토된 誌石 등으로 보아 아마도 安東權氏 22세손인 僕射公 權協150여년 후에 창건(1582) 하였다는 喚仙亭 부근 이었으리라 추정된다. 고려 공민왕 당시 강릉 臨瀛門 제작에도 참여 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82세의 를 다하면서 묘를 강릉 경포 증봉에 썼다는 기록만 있고 실전되었으니, 현재 포남동 153번지에 설단(設壇)하여 음력 315일에 시제를 올리고 있다.

 祠堂 永慕齋는 서기 1932(임신년)에 포남동 산 156번지 (현 하슬라중 앞산) 동쪽 기슭에 선조들의 얼을 기리기 위하여 세우고 落鄕祖 仁權(醒醉翁)業績觀心亭 失踪에 대한 애틋함과 44세손 朝散大夫 行 童蒙敎官公 性命公(愼庵)에 대한 업적을 기리고자 창건하였으나 쇠락하여, 창건 25년 후에 현재 위치로 移設 하였다.

 

正郞公 全仁權 遺稿

< 鏡 湖 詩 >

水面圓淸比鏡稱 호수의 수면이 맑고 둥글어 거울에 비기니

明波湖裏靜無塵 맑은 물결 호수속이 고요하여 티끌 하나 없도다!

但看漁夫窺漁面 다만 어부들이 물속에서 노는 고기떼를 엿보면서

豈照佳人粧影身 마치 어여쁜 여인이 몸을 단장하여 물속에 비친 것 같도다

風月江山徜依舊 바람과 달 강산이 모든 대자연이 옛과 같이 의연한데

笙歌詩酒幾經新 피리불고 노래하며 시를 읊고 술 마심을 몇 번이나 지냈는고?

此亭此景用無盡 이정자 이경치의 무궁한 극치를 비길 바 다함이 없으니

遊賞遊人無價珍 흥겹게 놀며 즐김을 맛봄은 값없는 무한한 보배로다.

 

 

 

晩退堂 전윤(全崙)의 시() ; 求禮縣監 晩退堂正郞公孫子.

< 寬心亭 >

良辰美景百花開 좋은 계절 아름다운 경치에 온갖 꽃들이 만발하니

耆老堂前話舊懹 기로당 앞에서 옛 회포를 이야기하네.

爛醉春風猶未罷 봄바람 속에 만취하여 아직도 끝낼 줄을 모르니

壽盃千歲勸千盃 천세를 비는 술잔 또 한 잔을 권하네.

 

조선시대 문과급제자[강릉지구 석릉군파]

시험종별

순위

성 명

년 도

관 직

본관()

중종12년 별 시

丙科 13

전공간(全公侃)

1517 정축

선공감 부정

(繕工監 副正) 3

정선(旌善)

선조 36년 식년시

丙科

11

전의민(全義民)

1603

계묘

이조정랑

(吏曹正郎)5

정선(旌善)

일명 김의민

 

 

採薇軒派

 

 

문천군수 全忠孝 묘소

 

 

모선재

 

全 忠 孝 (1433-1492) 

旌善全氏 33세손으로 字 誠敬. 忠順衛 通訓大夫 文川郡守 世宗 癸丑 十月 二十四日 生 . 壬子 八月 十九日 卒 . 配 淑夫人 江陵崔氏

江陵 丁洞 勉川里 幸亭上戌 生 . 雙封 有碣石 

 

祠堂 慕先齋 강릉시 한밭골길 25-15[대전동 56번지]에 위치하며

1864년경에 축조 하여, 후에 중수 하였는데 중수기에 따르면 창건 후 70여년(1934)이 흐른 후 사당이 많이 훼손되어, 후손들이 정성을 모아 중수하였다는 내용과 사당을 중심으로 동쪽에 재궁지기 가옥이 있었고, 서쪽에는 정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 규모가 상당 했었으나, 현재는 사당만 남아 있으며, 군수공이 거주하셨던 곳을 임영부의 東門龍池村에 그 옛터가 있으니 그 사실이 읍지에 실려 있다고 하였다. 음력 10월 보름에 시제를 봉향한다.

 

조선시대 문과급제자[강릉지구 채미헌파]

시험종별

순위

성 명

년 도

관 직

본관()

중종14년 식년시

丙科 01

전순인

(全舜仁)

1519 기묘

군자감 정

(軍資監 正) 3

정선(旌善)

선조06년 식년시

丙科 08

전방경

(全方慶)

1573 계유

용궁현감

(龍宮縣監) 6

정선(旌善)

 

 

臨河君派

 

 

제일 왼쪽 사진 한성부좌윤  全繼善 묘소 

 

 
 

임하군파 필구공 문중 회관

 

全 繼 善 (1648-1730)

朝鮮時代 壬辰倭亂 당시 忠勤貞亮 扈聖功臣 資憲大夫 刑曹判書 石陵君 全龍曾孫

정선전씨 45세손. 80세에 庭試에 참가하여 景宗이 친히 臨御하여 방()을 부르려 할 때 머리가 허였게 쉰 노인이 참여한 것을 발견하고, 이를 가상히 여겨서 특별히 漢城府左尹 兼 五衛都摠府 副摠管除授하였다.

 은 충주 입석촌에서 사시다가 강릉 낙향하시어 영조 庚戌(1730) 1129일 졸하였다. 향년82세이다.

는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535에 모셨다.

 

 

오늘은 약 40명 정도 참석하였으며, 회의 순서대로 전임회장 기념품전달, 회장 인사말씀, 전찬택 강릉충효교육원장의 경자년과 쥐띠에 관한 특강이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경자년에는 큰 사건 사고가 없는 무난한 해였다는 설명이 인상 깊었습니다. 박병원 사무총장의 전년도 결산서보고 등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식사 시간에 옆자리에 있는 강릉 김씨와 대화하였는데,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강릉김씨 지산군파[支山君派(派祖 金敬義)]의 스프링클러(sprinkler)가 설치된 묘소사진도 보여주었습니다. 묘소에 스프링클러(sprinkler)가 있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 지산군파 문중(支山君派 門中)에서는 지산빌딩도 지었고, 1인당 3,000만원씩 배부하였는데, 미국에 있는 어떤 여자 분은 나는 문중발전에 기여한 바가 없어서 정중하게 거절하였는데, 그 분이 사망하게 되었을 때 문중에서 한국에 있는 문중 산으로 모셨다는 일화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팔판동과 강릉 김씨와의 관계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참석한 회의에서 느낀 점은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많고, 열성이 있어서 발전하는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성회( 江姓會 ) 참여 성씨

강릉김씨 대종회

강릉최씨(충무공)대종회

강릉박씨대종회

강릉최씨(충제공)대종회

삼척심씨대종회

영해이씨대종회

황씨강릉종친회

동주최씨종친회

초계정씨종친회

연일정씨종친회

창녕조씨강릉종회

안동권씨강릉종친회

안성이씨영동종친회

정선전씨강릉종친회

가락김해김씨강릉종친회

은진송씨영동지구종친회

양천허씨강릉종친회

남양홍씨강릉종친회

밀양박씨강릉종친회

 

강성회 회칙

1(명칭)

강릉성씨회장단협의회(약칭 강성회)라 칭하고 이하 본회라 한다.

2(구성)

본회는 강릉시에 소재한 대종회, 종친회 회원단체의 회장과 부회장 1명으로 구성한다.

4(자격)

본회 회원의 자격은 장기간 강릉시에 입강(入江)하여 내무부령에 의하여 시에 등록된 대종회와 종친회로 정한다.

10(회의)

회의는 총회와 월례회로 하고 총회는 매년 115, 월례회는 매월 15(공휴일 포함)로 한다.

회의는 유사제로 하고 유사는 회원명단 순서로 하며, 장소와 일시를 10일전 사무총장에게 전화로 연락하여야 한다.

 

팔판동의 유래

서울의 팔판동(八判洞)은 당시 강릉김씨(江陵金氏)의 판서들이 집단적으로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으로 전해진다. 이중 유일하게 영의정에까지 오른 사람은 김상철(金尙喆)이다.

 

중기 이후엔 명종(明宗)~숙종(肅宗)대에 8명의 판서(선팔판(先八判)), 영조(英祖)~정조(正祖)대에 또 8명의 판서(후팔판(後八判))를 배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는다.

 

선팔판(先八判)

김첨경(金添慶 ()ㆍ예()ㆍ이판(吏判)),

김홍주(金弘柱 병판(兵判)),

김득원(金得元 병판(兵判)),

김홍권(金弘權 이판(吏判)),

김시환(金始煥 ()ㆍ이판(吏判))

김시현(金始鉉 이판(吏判)),

김시혁(金始火奕) 이판(吏判)),

김시경(金時烱 병판(兵判))

 

후팔판(後八判)

김상익(金尙翼 예판(禮判)),

김상성(金尙星 ()ㆍ호()ㆍ이판(吏判)),

김상중(金尙重 ()ㆍ공판(工判)),

김상집(金尙集 ()ㆍ공()ㆍ호()ㆍ병판(兵判)),

김상철(金尙喆 육판(육판)ㆍ영의정),

김노진(金魯鎭 ()ㆍ형()ㆍ이판(吏判)),

김화진(金華鎭 ()ㆍ형()ㆍ호()ㆍ공판(工判)),

김계락(金啓洛 ()ㆍ형()ㆍ예판(禮判))

을 이르는데 이 시기에 강릉김씨(江陵金氏)는 절정을 이루었다.

 

[출처]-강릉김씨 대동보- 조선왕조실록 참고

<강릉김씨 서울종친회 www.kangkim.or.kr>

 

김경의(金敬義)

1460-1529 강릉김씨, 정국공신(靖國功臣) 支山君

 

강릉 향교 충효 교육원 [ 江陵鄕校忠孝敎育院 ]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지명/시설

지역

강원도 강릉시 죽헌길 126[죽헌동 156-4]

시대

현대/현대

출처

디지털강릉문화대전-강릉 향교 충효 교육원

정의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전통문화 강좌를 운영하는 강릉 향교의 전통 예절 교육 기관.

 

개설

강릉 향교 충효 교육원은 강릉 지방의 전통문화, 특히 유교와 관련된 전통문화 강좌를 개설, 운영하는 평생 교육 기관으로 유교 문화 정착과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강릉 향교에 속해 있다.

 

건립 경위

2000년대 초반 강릉시는 전통문화 시범 도시 조성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2001년 강릉 향교는 강릉이 율곡 이이(李珥)[1536~1584]의 탄생지이고, 강릉 향교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는 차원에서 시민들을 위한 유교 관련 전통 예절 교육과 전통문화 강좌 운영을 위하여 강릉 향교 충효 교육원을 새롭게 건립하였다. 본래 유림 회관, 전통 예절과 동양 고전 강좌 운영을 위해 강릉 향교 명륜 교육원이 있었는데, 공간이 협소하고, 교육 여건과 환경이 미흡하여 강릉시 죽헌길 126 율곡 평생 교육원 옆에 독립된 교육 공간을 건립하였다. 또 강릉 유림들의 숙원이었던 유림 회관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강릉 향교 충효 교육원은 유림 회관의 용도로도 활용되고 있다.

 

구성

대지 면적 24970, 건물 면적 480, 지하 727규모이다.

 

현황

20013월 강릉 향교 충효 교육원은 강릉 향교 충효 교육’ 1년 과정을 처음 개설하였는데, 교육 과정은 예지반과 사서 삼경반으로 나눠 예지반은 명심보감(明心寶鑑), 전통 예절, 향토 문화사, 서예 등 기본 수양을 교육하였고, 사서 삼경반은 대학(大學)·논어(論語)·중용(中庸)·맹자(孟子)·시경(詩經)·서경(書經)·주역(周易)등 강론을 가르쳤다. 2012년 기준 수료한 교육생은 일반인 2,729, 군인 7,183명으로 모두 9,912명이었다. 2017년 현재 전통문화 및 예절 교육 강좌로 예지반, 중용반, 논어반, 맹자반, 삼경반, 서예반 등을 1년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수강 인원은 약 160명 정도이다. 매년 율곡제(栗谷祭)에서는 한시 백일장을 주관하고 있다. 운영 조직은 원장 1인에 강릉 향교 임원들이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2017627일 열린 제8회 강원 서예 문인화 대전에서 강릉 향교 충효 교육원 서예반 수강생 19[특선 3, 입선 16]이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강릉 향교 칠백 년사지(강릉 향교 칠백 년사지 편찬 위원회, 2013)

유교 신문(http://www.cfnews.kr)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강릉 향교 충효 교육원 [江陵鄕校忠孝敎育院]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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