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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성회(江姓會) 모임에서 정선전씨 홍보(弘報)
작성자 관리자 [2024-05-16 23: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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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5. 15. 11:00시에 강릉 청기와한정식에서 강성회(江姓會) 회원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월례회가 열렸습니다.

강성회(江姓會)는 江陵姓氏會長團協議會의 약칭으로 회원의 자격은 장기간 강릉시에 入江하여 내무부령에 의하여 市에 등록된 대종회와 종친회로 정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현재까지 강성회에 가입된 성씨는 20개에 이르고 있습니다.

① 江陵金氏大宗會

② 江陵崔氏(忠武公)大宗會

③ 江陵朴氏大宗會

④ 江陵崔氏(大卿公)大宗會

⑤ 江陵崔氏(忠齋公)大宗會

⑥ 三陟沈氏大宗會

⑦ 寧海李氏大宗會

⑧ 黃氏江陵宗親會

⑨ 東州崔氏宗親會

⑩ 草溪鄭氏宗親會

⑪ 迎日鄭氏宗親會

⑫ 昌寧曺氏江陵宗會

⑬ 安東權氏江陵宗親會

⑭ 安城李氏嶺東宗親會

⑮ 旌善全氏江陵宗親會

⑯ 駕洛金海金氏江陵宗親會

⑰ 恩津宋氏嶺東地區宗親會

⑱ 陽川許氏 江陵宗親會

⑲ 南陽洪氏 江陵宗親會

⑳ 密陽朴氏江陵大宗會

매월 15일에 20개 성씨 모임 중에서 유사(有司)를 지정하여 운영하며, 유사를 맡은 문중에서 자신의 문중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오늘은 정선전씨를 소개하는 날이었기에, 정선전씨 강릉지구 종친회(회장 전인순)에서는 리플렛(leaflet)을 작성하여 배포하였으며, 사단법인 전씨중앙종친회 전과웅이사가 소개하였습니다. 소개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全 氏 來 歷
 
1. 시조 및 중시조
① 시조: 전섭(全聶)
백제 십제공신(百濟 十濟功臣)이며 단소(壇所)는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 천장산(天藏山) 기슭에 있습니다.
 
② 중시조: 전선(全愃)
신라 시대 추부시랑을 역임하였으며 묘소는 정선군 남면 낙동리 서운산(瑞雲山) 기슭에 있으며 8청룡 9백호의 대지(大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2. 삼국시대에 전씨 성(姓)이 존재했는지에 대한 고증
삼국시대 역사에서 전씨 성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고 이를 고증하기 위하여 우리 문중 사람들은 마음속에 큰 숙제로 대대로 내려왔었습니다.
1960년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 있었으니 세종시 전의면 비암사 삼층석탑 꼭대기에서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이었습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암적갈색 연질납석으로 만든 불상이며 국보 제106호입니다.
명문(銘文)에 전씨(全氏)에 대한 기록이 나와서 신라 백제 시대의 구전(口傳)이 일거에 객관적인 고증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큰 홍복(洪福)을 받은 것이며 오랜 염원이 해결되는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은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쌍류리에 살고 있던 한 학생이 비암사의 3층 석탑 위에 탑 일부분이었던 것을 주지 스님에게 건의하여 동국대 황수영교수에게 제출하게 된 것입니다. 학술적으로 인정되어 국보에 지정되게 이르렀던 것입니다.
구전(口傳)이 아니고 객관적인 全氏의 기록은 673년(신라 문무왕 13)경으로 추정되는 금석문(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명문(銘文)이 최초이고 989년(성종 8) “전보인이 나주목경학박사(羅州牧經學博士)로서 후학을 근실히 가르쳐 포상을 받았다.”는 고려사 문헌이 최고로 오래된 정사(正史) 기록입니다.
금석문과 고려사 기록으로 보아도 아주 오랜 역사를 지낸 씨족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의 속명이 ‘전견명’이라는 학설이 제기되었습니다. 군위군문화원이 발간한 책자에서 전견명임을 밝혀서 공적기관에서 최초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고려 시대 활동 상황
왕건의 공산 동수 전투(公山 棟藪 戰鬪)에서 신숭겸장군과 함께 전사한 전이갑 장군이 있으며, 고려 개국공신의 한 분입니다. 대구에 한천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고려 시대에 활동한 관료와 학자인 전보인은 989년 숙유(덕망있는 선비)로 존경받았으며, 경학박사로 최치원, 설총의 1세대 이어 2세대의 유학자로 추측됩니다.
고려 시대에는 전씨들의 최전성기였으며, 지금의 장관급의 인물이 3명 배출되었으며, 고위관리를 많이 역임하였습니다.
 
4. 조선 시대 활동 상황
조선 시대에는 불사이군을 선택하여 두문동에서 정선으로 은둔의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채미헌 전오륜은 고려말 형조판서와 대제학을 역임한 학자였으나 조선에 협조하지 아니한 형별로 본관에 유배되는 형을 받아서 정선 거칠현동으로 들어왔으며 고려말 이조정랑을 역임한 성취옹 전인권은 강릉으로 들어와 은둔하였으며, 경포호수 부근에 관심정 정자를 창건하였으며 중양가를 지어 널리 유포하였습니다. 조선 시대는 침체기지만 은둔에서 조금씩 벗어나 조선 시대에 60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습니다.
부제학을 역임한 사서 전식(시호는 충간공이며 퇴계학파 학자)과 대구에 성리학을 최초로 전파한 계동 전경창이 있습니다. 형조참판을 역임하고 유학자이면서 의사인 전유형(장원급제)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최초로 인체해부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시호를 받은 분은 문평공 전백영(예조판서역임), 충간공 전식(부제학역임), 의민공 전유형(형조참판역임)입니다.
조선말에는 유학자로서 의금부도사를 역임한 전병훈이 있습니다. 이분은 중국에 망명하여 그곳에서 활동하여 대학자로서 추앙받았으며, 그의 문하에는 중국의 72명의 장상(將相)이 즐비했고 유럽에서 온 외교관들도 그를 스승으로 섬겼으며, 조선사람으로서 이런 대우를 받은 이는 최치원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중국 사람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으며 명성이 널리 퍼진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간송 전형필은 전 재산을 투자하여 일본으로 반출되는 문화재를 사들여 우리나라 문화재를 보호하는 데 앞장섰으며, 간송미술관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5. 강릉지방 인물의 활동 상황
1466년 강릉지방에 문사(文士)들이 결성한 금란반월회에 창립멤버 16명 가운데 2명이 정선전씨입니다. 훈도 전장손(全長孫), 생원 전이(全彛)입니다.
정선전씨 석릉군파 정랑공 강릉문중 가승보(1534년)는 우리나라 최초 족보로 알려진 안동권씨 성화보(1476년)와 문화류씨 가정보(1562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조선 시대의 과거급제자는 평산부사를 역임한 전공간, 정선군수와 군자감정을 역임한 전순인이 있습니다. 두 분이 활동한 시기는 조선 초기로 어촌 심언광과 거의 동시대였습니다.
최근에는 전영진장군, 전인석 아나운서, 배우 독고영재, 현진에버빌아파트건설회사 전임 회장 전상표, 강릉향교 전교를 역임한 전찬택 등이 있습니다.
 
 
 
중양가(重陽歌)
성취옹(醒醉翁) 전인권(全仁權)
 
【중양절(음력 9월 9일)은 풍광이 좋은 높은 곳에 올라 국화를 감상하는 날입니다.】
각자 술병을 가지고 취미(翠微, 산 중턱)에 올라오시오.
백발노인이 꽃 감상하는 것을 사람들은 웃지 마시오.
풍류를 즐김은 소년 때와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은 항상 젊어, 몸만 늙는다.】
술 취한 동안 마음은 소년 시절로 돌아가고
지난해 모임에는 귀밑털이 희게 되었다.
올해는 수염에 서리가 내리고,
세월이 물같이 흘러 우리의 모습이 나도 모르게 늙었네.
세월이 늙음을 재촉하니 어쩔 수 없이 바쁘게 늙어가네!
 
【늙어 감을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도다.】
한번 지나가면 오지 않는 젊은 시절이어라
오늘의 기뻐하고 즐거워함은 다만 한때이려니.
전국의 원로들이 규칙을 비로소 만들었으니
장수를 기원하는 술잔을 권유받으면 놓지 말고 바로 마시기를,
술에 취하니 근심이 없어지고 늙음이 더디 오더라.
 
【서로 술을 권하며】
사람의 삶에 있어서 의지처가 없어도 술잔은 앞에 있는 듯하여
사방에 어려움이 없어 태평한 시절이로다.
좋은 계절에 기이한 경관이 눈앞에 펼쳐져
시원스럽고 멋진 강산의 가을 풍경을 곁에 두고
술동이를 앞에 놓고 노래와 춤을 추니 이 구역의 신선이 바로 나로구나.
 
【멋진 계절을 감상하며】
서리 맞아 단풍 든 잎은 음력 2월 꽃보다 붉고
가을 기러기는 소리를 내며 모래톱 위를 지나는구나.
저녁때가 되니 몇 마리의 까마귀가 나무꼭대기로 돌아오고
땅거미가 질 무렵에 세속의 일을 잊고 술에 만취하여서
하늘 가운데 밝은 달을 보면서 앉아서 근심을 소멸시켜 보세.
 
【애수에 잠긴 마음을 풀어보세】
근심을 끊기 위해 칼 대신 술을 사용하여 얼큰하게 취하니
바람과 이슬과 비가 그치지 않고 서늘하여 술의 힘이 줄어들었다.
반은 술이 깨고, 반은 취하여도 뜻은 적합하니
오늘 밤 저 달은 삼경(밤11시-1시)에 질 것이니
아직 삼경에 이르지 않았으니 어찌 돌아갈 것을 근심하리오.
 
【밤새도록 술을 마셔보세】
달빛 아래 향기로운 술동이는 가득 차고 술잔에도 술이 가득 차도다.
오늘은 임금의 은혜가 멀리 지방까지 윤택하게 하니,
쇠잔한 노인과 생활이 어려운 백성들이 다시 활기차게 일어나도다.
우습도다! 헐벗은 산인 우산(牛山)이 지금 해가 저물어가니,
고인들은 무슨 일 때문에 홀로 눈물로 옷깃을 적셨을까?
 
【춤과 노래를 즐깁시다.】
태평한 시절이니 즐거움이 끝이 없으니
그대에게 다시 한 잔 권하노니 술잔이 머무르지 않도록 합시다.
술잔 속의 국화를 띄우니 술이 향기가 은은하니
참석자 모두가 지금은 관직에 은퇴한 늙은이들이군.
해장하여 술이 깨니 반은 취하니 또한 어찌 손상이 있겠는가?
 
【술에 취함을 사양하지 말라】
단지 술 없이 백 년을 보내는 것은
세속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것이로다.
취해서 춤추고 소리 높여 노래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니
이 땅에서 깨끗하고 속되지 않게 노는 것에는 오히려 부족한 것이다.
해마다 또 다가오니 올해 중양의 가절(佳節)을 보내줍시다.
 
【각자 산회하여 돌아갑시다.】
국화꽃을 반드시 머리에 가득 꽂고 돌아갑시다.

《原文》
 
【重陽登賞古今】
各自提壺上翠微
白髮揷花人莫笑
風情無別少年時
 
【心不老心不老】
醉裏風情適少年
去年此會鬂生雪
今日相看鬚帶霜
歲月如流人自老
年光催老老中忙
 
【傷嘆老傷嘆老】
一去不來唯少年
此日歡娛但此時
三韓元老始爲規
壽杯相勸莫停手
閑醉無愁却老遲
 
【相勸酒相勸酒】
人生無處似樽前
四方無事太平年
佳節奇觀滿眼前
瀟灑江山秋色裏
對樽歌舞一區仙
 
【賞佳節賞佳節】
霜葉紅於二月花
一聲秋雁過汀洲
數點昏鵶返樹頭
薄暮忘機須酩酊
半天明月坐消憂
 
【解愁腸解愁腸】
割斷愁腸酒作刀
風露漊凉酒力微
半醒半醉志相宜
今宵是月三更落
未到三更何必歸
 
【終夜飮終夜飮】
月滿金樽酒滿盃
當今聖澤洽遐方
殘老窮民興更長
堪笑牛山今日暮
故人何事獨沾裳
 
【樂呈才樂呈才】
泰平時節樂無窮
勸君更進莫留觴
泛菊杯中酒有香
皆是如今官罷老
解醒半醉亦何傷
 
【莫辭醉莫辭醉】
但送百年無過酒
難爲塵世作歡場
醉舞狂歌也不妨
此地淸遊猶未足
年年又到送重陽
 
【各散歸各散歸】
菊花須揷滿頭歸
 
[출처: 旌善全氏 根源敍及 正郎公 遺稿集]

 

 


 


 

[기사작성]  전씨 중앙종친회  이사  전과웅

[사진제공]  전씨 중앙종친회  종보편집국장  전남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