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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임영세고』를 통해 새롭게 만난 최씨 삼현
작성자 관리자 [2026-09-08 12: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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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세고』를 통해 새롭게 만난 최씨 삼현

― 선현을 기리는 일은 역사를 배우는 일이다 ―

 

 


 

 

 

1. 강연 개요 및 참석 배경

2026년 9월 7일, 강릉향교 명륜문화관에서 개최된 ‘국불천위 문정공 원정 최수성 선생 제505주기 추모 학술강연회’에 청중으로 참석하였다. 이번 강연회는 강릉시와 강릉최씨대종회가 주최하고 강릉향교 등이 후원하여 마련된 자리로, 조선 중기 탁월한 학자이자 예술가였던 원정 최수성 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첫날 강연은 전 강원대학교 강릉캠퍼스 박도식 교수가 강사로 나서 『임영세고』를 통해 본 최씨 삼현(崔氏三賢)의 생애와 활동을 주제로 강의를 펼쳤다.

 

① 『임영세고(臨瀛世稿)』와 최씨 삼현(최치운·최응현·최수성)의 세계

본격적인 강연은 최씨 삼현인 최치운, 최응현, 최수성 선생의 행적이 담긴 문집인 『임영세고(臨瀛世稿)』의 간행 배경부터 다루어졌다. 1869년 강릉의 유학자 최명수가 향현사에 소장되어 있던 유집(遺集)이 화재로 소실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도처에 흩어진 시문을 수집·간행한 이 문집은 강릉 지역 가문과 선현들의 자취를 후대에 전하는 소중한 유산임을 알 수 있었다. 강의를 통해 접한 조선시대 역사적 사실들은 기존의 통념을 깊이 있게 확장해 주었다.

 

② 최치운 선생:

외교 문서 양식인 '이문(吏文)'에 능통하여 승문원과 집현전에서 국왕 자문, 고제 연구 및 편찬 사업에 기여하였고, 여진 정벌과 4군 개척에 일조하였다. 또한 중국의 검시 서적인 『무원록(無寃錄)』을 우리말로 풀이하여 신주무원록 편찬을 주도함으로써 조선의 검시 수준을 세계적 반석에 올리고 『경국대전』에 실리게 하였다. 아울러 1411년 강릉향교 화재 소실 당시 국가의 토목공사 금지령 속에서도 유생들의 진정서를 주도하여 향교 중건을 이끌어낸 주역이었다.

 

③ 최응현 선생:

1448년 생원·진사 양과에 합격하고 성종 때 강릉훈도가 되어 어머니를 모셨으며, 율곡 이이의 생가인 오죽헌을 지은 분이라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아울러 조선시대 상속 제도가 맏아들 독점이 아니라 딸들을 포함하여 1/n 로 공평하게 배분되었고, 노비 역시 합리적으로 나누었던 당시의 사회상을 접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④ 원정 최수성 선생:

성종 18년(1487)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뛰어난 지혜를 보였고, 조광조·김정·김식 등 신진 사림파와 교유하였다.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로 동지들이 처형되자 벼슬길을 마다하고 문장·서법·화격·음률에 뛰어난 사절(四絶)로서 일생을 보내며 <암송규응도(巖松窺膺圖)>, <운기용흥도(雲氣龍興圖)> 같은 훌륭한 그림을 남겼다. 비록 중종 16년(1521)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35세의 젊은 나이에 화를 입었으나, 사후 20년 만에 신원되어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정공' 시호를 받았으며, 선조 때 토지 8결이 하사되고 제향되도록 명받았다.

 

2. 역사의 입체적 조명과 청중으로서의 감상

이번 강연은 단종의 즉위와 비극적 폐위, 세조의 왕위 찬탈과 훈구·사림 세력의 갈등, 연산군의 실정과 중종반정, 그리고 조광조의 현량과 시행에 이르기까지 조선 전기의 급격한 정국 변화 속에서 선현들이 겪었던 고뇌를 입체적으로 조명해 주었다. 특히 역사 속 사건을 단편적인 암기가 아니라 당시 정치적 역학 관계와 사림파의 도덕적 지향점 속에서 풀어낸 박도식 교수의 강연은, 깊이 있는 연구가 뒷받침된 학자의 시선이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지 깨닫게 했다. 강연을 들으며 조선시대가 단순히 억압적이거나 고정된 사회가 아니라, 상속과 재산 분배에 있어서 합리성을 지녔고 향교 건립이나 국방 정비 등 민생과 국가 기틀을 다지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한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음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원정 최수성 선생이 불우한 정치적 현실 속에서도 절의를 지키며 문예에 매진하여 독보적인 예술혼을 남긴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삶의 지표와 정신적 귀감이 된다.

 

3. 맺음말

오늘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강릉향교가 그냥 오랜 세월을 견뎌온 건물이 아니라, 선현들의 노력과 지역 유림들의 뜻이 쌓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강릉향교라는 유서 깊은 공간에서 지역의 위대한 선현인 최씨 삼현, 그중에서도 국불천위로 모셔진 원정 최수성 선생의 발자취를 되짚어본 이번 학술강연회는 역사적 자긍심을 채우는 소중한 기회였다. 비록 현재 원정 선생의 학문과 덕행이 국불천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으나, 이번 강연을 계기로 선조들의 고결한 선비정신과 문화적 자산이 더욱 널리 선양되고 후대에 올바르게 계승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