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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빈집에 여우가 돌아온다면
작성자 관리자 [2026-08-17 10: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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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윤의 길을 걸으며 [42]
빈집에 여우가 돌아온다면





 

내가 사는 마을에는 빈집이 꽤 여러 채 있다. 깨진 유리창 너머는 마치 시간 여행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오래됐다.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는 누가 살까? 고양이, 거미, 나비. 새ᆢ 잠깐. 시집을 들고 벽에 기대 선 깡마른 사내가 어른거리는 듯도 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저 어 두운 구멍에는 사람 아닌 것이 드나들 것만 같다.


며칠 전 홋카이도 오타루에서 여행 온 친구가 말했다. "우리 집 근처 빈집에는 여우 가족이 살고 있어. 새끼 여우 두세 마리가 마당에서 놀다가 모모가 쳐다보니까 어미가 삐이이 울고 새끼들이 황급히 빈집 구멍으로 들어갔대." 모모는 친구 딸아이다. 모모가 찍은 사진 속에는 정말로 동화에서 본 여우가 있었다. 귀와 주둥이가 뾰족하고 붉은 털에 흰 배, 검은 다리, 이 땅에서는 오래전 사라진 여우였다.

 

한반도에도 여우가 살았다. '밤늦게 산길을 걷는 사람, 새벽에 밖으로 나가는 사람, 나무를 하러 산에 오르는 사람, 무덤가를 지나는 사람은 여우와 마주칠 수 있었다. 야생 여우는 흔했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 흔함 때문에 사라짐이 늦게 보였다. 흔한 동물도, 익숙한 생명도. 이야기 속에 많이 남아 있는 동물도 현실에서 사라질 수 있다.

 

' 우리나라에서 멸종 위기인 여우를 소백산에 방사하여 2027년까지 100마리가 야생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담은 책 '사라진 여우를 찾아서' (송병철, 2026)를 읽는데, 정신이 번쩍 든다. 오늘 흔한 것도, 내일 사라질 수 있다.
여우가 자취를 감춘 건 쥐약을 놓으면서부터. 쥐를 잡아먹는 여우가 중간에 희생되었고 결국 사라졌다. 인간이 마술봉을 휘두르듯 강력한 힘을 행사하면, 꼭 중간에 예기치 못한 일 들이 벌어진다. 우리가 멸종되지 않으려면 더 조심스러워져야 한다. 저 빈 집에 여우가 돌아올 만큼, 우리에게 푸른 틈을 만들 여유가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을지도. 

 

작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