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72]
김일성이 살려낸 박정희

1950년 6월 25일 새벽. 나는 작전명 '폭풍 작전'에 따라 한반도 38도 선을 넘어서 기습 남침하는 북한의 소련제 탱크와 인민군 보병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22시에 휴전이 발효돼 2026년에도 73년간 지속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갈아엎어지는 대란으로 천재지변 말고는 '전쟁' 과 '혁명'을 손꼽는다. 이 두 가지로 인해 인간이 역사를 바꾸기도 하고. 역사가 인간을 지배하기도 한다.
러시아 '10월 대혁명'은 율리우스력 으로는 10월이지만 그레고리력으로는 11월에 일어났다. 박정희는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한 1917년 11월 7일로부터 일주일 뒤인 14일에 태어났다. 훗날 만주군관학교, 일본 육사를 거쳐 국군이 된 박정희는 남로당 활동을 하다가 체포된다. 총살형이 당연한 상황에서 그는, 국군 내 남로당 조직도를 제공한 것과 그의 능력을 아깝게 여긴 상사들의 보증으로 목숨을 부지한다. 계급장이 없어진 처지에서도 박정희는 일개 '문관(일종의 사환)'으로서 군 언저리에 남는다.
그렇게 군인으로서는 끝장이 났고 사회인으로서도 별 희망이 없는 박정희에게 '역사의 아이러니'가 장난기 많은 신의 주사위놀이처럼 임한다. 김일성이 스탈린, 마오쩌둥의 허락과 도움을 받아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바로 이 덕에. 당시 수원으로 후퇴해 있던 육군본부 정보국 문관 박정희는 남로당 사건 이전의 육군 소령 계급을 회복한다. 그 현장에는 장도영 대령(훗날 육군참모총장으로 5∙16쿠데타에 엮여서 참여했다가 반혁명 분자로 축출)과 김종필 중위(훗날 5∙16쿠데타의 설계자)가 있었다.
만약 6∙25전쟁이 없었다면 박정희는 저절로 시들다가 소멸해버렸을 공산이 크다. 김일성은 제 일생 최대의 적 박정희를 일으켜준 셈이 되고, 박정희의 국방과 경제발전에 가로막혀 남한을 복속시키지 못한다. 김일성은 1994년에 죽기까지, 1979년에 죽은 박정희가 남긴 것들에 시달리게 된다. 러시아 대'혁명' 에 태어난 박정희가, 김일성이 부활시킨 박정희가, 휴전선 아래로 공산주의가 내려오는 것을 막았다.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