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생동하는 한강을 바라보며 | |||
작성자 | 관리자 [2023-03-18 22:32: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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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감상
생동하는 한강을 바라보며
연화봉은 짙푸르러 비 기운 가득하고 바람 따라 쉽게 뜰의 나무 축축해지네. 온 골짝에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 삼호가 생동하여 밤새도록 일렁이는 물결. 흰 물새는 그림자 담그고서 맑은 물에 섰고 생선을 건지는 어선들이 석양과 어울리네. 오늘 아침 봄소식을 찾아보았더니 여린 쑥과 작은 버들 언덕에 함께 났네.
花嶺蒼蒼雨氣多 화령창창우기다 隨風容易濕庭柯 수풍용역습정가 消融萬壑全冬雪 소융만학전동설 生動三湖一夜波 생동삼호일야파 白鳥影涵明鏡立 백조영함명경립 靑魚船入暮雲和 청어선입모운화 今朝試覔春消息 금조시멱춘소식 嫰艾纖楊共一坡 눈애섬양공일파
- 채제공(蔡濟恭, 1720~1799) 『樊巖集』 卷16 「春雨連宵, 氷盡水生, 欣然賦之.」
해설 채제공은 정조 재위 기간 동안 정승의 지위에 올라 깊은 신임을 받은 남인의 영수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정승에 오르기 전 유배에 준하는 기간이 있었으니, 그것은 정조 초기 정치적 탄압을 받아 7년 간 마포 등지로 문외출송(門外黜送)되는 시기이다. 사건의 발단은 좌의정 서명선이 당시 정조의 총애를 받고 있는 홍국영에게 아첨하기 위해 홍국영의 누이 원빈 홍씨에게 문안드리는 절목을 첨부한 데 있었다. 채제공은 하늘에 해가 2개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논박했고, 이에 서명선은 앙심을 품고 노론 세력과 손잡고 채제공을 공격한다. 처음에는 억지에 가까운 논핵들이 있었지만 1781년(정조5) 대사헌 김문순은 정조 즉위년 사도세자 추숭사건과 관련하여 이들과 결탁한 환관 김수현(金壽賢)의 공사(供辭)에 채제공의 이름이 나온 점, 홍국영과 함께 사도세자와 정조의 정통성을 주장한 점을 근거로 그에게 역모죄를 적용하였고, 이듬해 서명선과 이휘지가 다시 한 번 역모죄를 제기하면서 채제공은 마침내 변무소(辨誣疏)를 올리고 마포로 내려가 그곳에서 10달 동안 하목정(霞鶩亭), 성씨정(成氏亭), 만어정(晩漁亭), 무명정(無名亭) 등을 두루 유람하였다. 겉으로는 유람이지만 실제로는 전전하였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이다.
이 시는 성씨정(成氏亭)에 지낼 때 지은 듯하다. 봄비가 내린 뒤 마포의 정경을 묘사하였다. 연화봉은 비 기운으로 짙푸르고, 삼호는 겨우내 얼음이 녹아 출렁인다. 거울 같은 맑은 강에 흰 물새 그대로 비치고 저물녘 돌아오는 고깃배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立과 和는 涵과 入을 꾸며주는 부사로 立은 즉시[立刻]라는 뜻이고 和는 천천히 스며드는[融洽] 의미이다. 경련의 靑魚船入은 본디 고깃배가 생선을 건지는 장면인데, 앞구의 白鳥影涵와 대우를 맞추기 위하여 생선이 고깃배로 들어간다고 글자를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참신한 맛이 난다. 미련에서는 여린 쑥과 작은 버들잎으로 봄기운이 천하에 퍼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시의 함련은 일종의 시참(詩讖)이 되는데, 정약용의 《혼돈록(餛飩錄)》에서 “번옹은 만년에 한강 교외로 추방을 당해 있었다. 마침 봄에 눈이 녹아 물이 불어나는 것을 보고 읊은 시가 있다. 무신년(1788)에 입각을 하게 됨에 사람들은 이 시를 두고 전화위복의 기상이 있다고 말하였다.”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목만중도 당시 채제공에 대해 베개를 베고 코를 골며 잠들었노라고 회고하였다.
채제공은 어떻게 이렇게 태평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봄에 불어나는 한강을 보며 그가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살면서 누구나 역경은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겨울과 같은 것이다. 묵묵히 한발 한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각자의 봄이 찾아올 것이다. 계묘년의 봄, 역경은 뒤로하고 힘차게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글쓴이 이승재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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