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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택부 [全澤鳧]
작성자 관리자 [2020-01-23 1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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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택부 [全澤鳧]

 

출 생: 1915년 2월 12일 ~ 2008년 10월 21일(사망)

본 적: 함경남도 문천 출생

경 력:

1975 - 서울YMCA 명예총무

1964 - 서울YMCA 총무

1954 - 월간지 '사상계' 주간

1952 - 월간지 '새벗' 주간

 

수상내역:

2008 - 세종문화상 사회봉사부문

2008 - 한글학회창립100돌기념 공로상

1986 - 제1회 인간상록수상

1980 - 외솔상

 

저  서: 

양화진 선교사 열절, 한국교회 발전사, 한국 에큐메니칼운동, 한국 기독교청년회, 토박이 신앙산맥1.2.3, 한글의 성서적 의미, 자화상을 그리듯이1.2.3, 이상재 평전외 다수

 

▶ 오리 전택부 발자취

1915년 2월 12일 함경남도 문천에서 태어남. 1937년 함흥 영생고보 졸업. 1937년 일본 동경, 일본신학교(현 일본신학대학) 입학, 중퇴. 1940년 동교 예과 졸업, 동교 본과 입학, 중퇴. 1944년 한춘학 씨와 결혼. 1945년 북한 탈출, 월남하여 서울에 정착. 1952년 월간 《새벗》 주간. 1954년 월간 《사상계》 주간. 1955년 한국신학대학교(현 한신대학교) 강사. 1955년 중앙신학(현 강남대학교) 강사. 1958년 한양와이즈멘즈클럽 창립 총무. 1958년 서울 YMCA 회관 재건 사무국장(1958년 준공, 위원장 허정). 1959년 서울라이온즈클럽 총무. 1961년 국제라오온즈클럽 한국지구 주재 국제대표. 1964년 서울 YMCA 총무. 1967년 YMCA 회관 건축(지하 2층, 지상 8층 연건평 4000여평) 완료. 1968년 세계 WCC 제4차 대회 한국대표(스웨덴 웁살라). 1968년 제14차 사회복지 및 인권 세계대회 한국대표(핀란드). 1969년 YMCA 세계대회 한국대표(영국 노팅험). 1970년 서울특별시 자문위원, 민간장학관. 1971년 크리스찬 문학가협회 수필분과 위원장. 1972년 소천아동문학상 위원장. 1972년 문교부 교육정책심의회 위원. 1974년 아시아 및 태평양연안 YMCA국제협력문제 협의회 한국 대표(필리핀). 1975년 서울 YMCA 자진 퇴직(60세). 1975년 사단법인 한글전용국민실천추진회 2대 회장(초대 회장 주요한). 1976년 국어순화추진회(문교부) 위원. 1981년 대한 기독교서회 이사. 1981년 재단법인 외솔회 이사. 1982년 한국 기독교 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 사료위원회 위원장(회장 한경직). 1983년 한국방송 사랑방 중계 7년간 출연연. 1984년 사회복지법인 교남재단 이사장(2008년 사임). 1984년 한국 도서잡지 주간신문 윤리위원회 위원. 1985년 그리스도교 겨레문화연구회 초대회장. 1985년 방송 심의위원 5년간. 1987년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부회장(초대회장 안호상). 1991년 조선일보 국어연구원 표준화법 자문위원. 1997년 청소년과 놀이문화연구소 이사장. 1997년 세종국제공항 명칭 추진위원회 위원장. 1998년 장묘문화개혁 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 1999년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명예회장. 2000년 한글날국경일제정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 2002년 한글인터넷주소추친총연합회 의장. 2006년 한글학회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회 고문. 2008년 10월 21일 소천.(향년94세)

 

오리 전택부 선생은 우리식 나이로 94살을 살다가 이 땅을 떠났다.

그는 첫째, 기독교청년회청년회(YMCA) 총무로서 세상에 널리 이름이 알려졌다. 기독교청년회관을 짓고 이끌어온 기독교청년회의 산 증인이다. 그리고 기독교 장로로서 모범 종교인이었다. 기독교청년회 선배요 스승인 이상재 선생을 존경하고 <월남 이상재>란 인물 평전을 내기도 했다. 기독교 역사학자로서 <한국교회발전사>, <한국토박이 신앙산맥>, <양화진선교사열전> 등의 책을 펴냈다. 청소년 교육에 관심도 많고 그 노력을 열심히 했다. 그 정신을 큰 아들인 전국재(청소년과 놀이문화연구소 소장) 교수가 이어서 활동하고 있다.

둘째, 그는 글을 쓰는 수필가였다. 일찍이 1952년에는 이 나라에서 가장 앞장선 어린이 월간지인 <새 벗>의 주간을 맡아 온 나라의 어린이들을 훌륭하게 길러내셨고 1954년에는 월간잡지인 <사상계>의 주간을 맡아 이 땅의 모든 지성인들에게 온전한 사상과 애국심을 일깨워주셨다. 그리고 1967년에 ‘강아지의 항변’이란 첫 수필집을 시작으로 ‘세상은 달라진다’ 등 많은 수필집을 냈다. 이번 추모문집에 그가 낸 30 여 권의 머리말을 모두 소개하고 유고가 실렸다

셋째는 한글사랑 운동에 나머지 온 삶을 바치셨다. 그는 수십 년 동안 한글전용실천회 회장, 국어순화추진회 부회장,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부회장 등 한글단체 간부로서 한글사랑에 앞장섰으며 돌아가시기 전에는 ‘한글날국경일제정범국민운동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법을 통과시켰다. 아흔 살을 바라보는 노인이 2002년에는 청와대로 대통령을 찾아가서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해 달라고 호소하러 갔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그 뒤 병원에 누워서도 “나는 죽어도 좋으니 한글날은 국경일로 만들어 달라.”는 시까지 지어 발표했다.

 

 

 

  모범 종교인으로서, 사회운동가요 애국자로서, 한글운동가로서 아름답게 살다간 그의 삶의 발자취와 고뇌가 그의 추모 문집 ‘위대한 보통사람 오리 전택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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