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원발(全元發) | |||
작성자 | 관리자 [2020-09-13 19:56: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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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22] 전원발(全元發)
국파 전원발(菊坡 全元發) 원나라 괴과(魁科)에 급제 전원발(?~?) 본관은 용궁(龍宮). 호는 국파(菊坡). 현서 달지(縣西 達池: 聞慶 永順) 출생으로 1315년(충숙 2) 원나라의 괴과(魁科)에 급제하여 금자광록대부 병부상서 겸 집현전태학사(金紫光祿大夫兵部尙書兼集賢殿太學士)에 이르렀다. 고려로 돌아올 때 원나라 황제 순제(順帝)를 하직하면서 ‘고려에서 거두는 세공을 대폭 줄여 달라 청하니 순제는 이를 허락하고, 공복(公服) 한 벌을 하사하며 이별을 아쉬워하였다’ 한다. 귀국하여 축산부원군(竺山府阮君)에 봉해지고, 조선건국 후 명나라에서도 이 예(例)에 따르니 이 공을 치하하여 태조(太祖)는 다시 축산부원군에 봉하였다. 그는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인 용주서성화천(龍州西省火川)으로 내려와 청원정(淸遠亭)을 짓고 자연을 벗 삼아 자적(自適)하였다. 또한 명필이었으니 법주사에 있는 자정국존보명탑비문(慈淨國尊普明塔碑文)이 지금도 남아 있다. 1698년(숙종 24)에 ‘고려 명신으로 원에서 조공의 폐됨을 아뢰어 생령(生靈)을 편찬하게 했다‘하여 고향의 성화천을 소천(蘇川)으로 고치게하였고, 1701년(숙종 2)에 숭덕사(崇德祠)와 전교당(典敎堂)을 짓고 애국심을 기리니 곧 소천서원(蘇川書院)이다. 출처: 재단법인 한국국학진흥원
人事篇 / 治道類 科擧 [0412]東人參中國榜眼辨證說 全元發、 【號菊坡。登文科。又登制科第三人。官翰林學士。壽城人。在于光下。】 출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人事篇 / 治道類 > 科擧
제 목 : 龍宮閑居次金蘭溪得培韻 용궁에서 한거하면서 난계 김득배의 운을 빌어-전원발(全元發)
江闊脩鱗縱 林深倦鳥歸 歸田是吾志 非是早知機
강 넓어 큰 고기들 마음껏 놀고 깊은 숲에 지친 새 돌아오는구나! 시골로 돌아옴이 내 뜻이지만 진작에 기미를 안 것은 아니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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