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두산백과 내용 수정 신청 결과 [ 판삼사사 전보문 관련] | ||||||||||||||||||||||||||||||||||
작성자 | 관리자 [2020-09-12 10:03: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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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백과 내용 수정 신청 결과 [김보문 컨텐츠 삭제 요청]
1. 결과 ① 두산백과 [www.doopedia.co.kr] : 김보문(金普門) 삭제 ② 네이버 지식 in[https://www.naver.com] : 김보문(金普門) 삭제
2. 신청내용 요약과 경과 『전보문(全普門)』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기록상에 지금의 장관인 판삼사사(기획재정부 담당업무와 유사함)와 전리판서(행정안전부 담당업무와 유사함)를 역임하였습니다. 안경공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두산백과와 네이버에 『전보문(全普門)』을 소개하고 있고, 똑같은 내용으로 김보문(金普門)도 안경공이라고 칭하면서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김보문(金普門)을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 찾아보아도 전혀 기록이 없으므로 이는 『전보문(全普門)』의 전(全)을 김(金)으로 잘못보고 두산백과에 등재되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즉 전혀 실존하지 않았던 가공의 인물이어서 김보문(金普門) 내용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2019년에 신청하였는데 수정할 수 없음을 통보받고 증빙서류를 붙여서 또 다시 제출하였으나 9개월 동안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다시 신청하여서 거의 1년 만에 김보문(金普門)을 삭제하게 되었습니다.
3. 네이버에서 보낸 결과 통보
4. 전보문 고려사 기록
고려사 > 卷四十一 > 世家 卷第四十一 > 恭愍王 14年 > 윤10월 > 전보문 등을 관직에 임명하다 1365년 윤10월 3일(음) 정사(丁巳), 1365년 11월 16일(양) 전보문 등을 관직에 임명하다 윤10월 정사 전보문(全普門)을 판삼사사(判三司事)로, 최백(崔伯)을 밀직사상의(密直使商議)로 삼았다. [原文] 閏月 丁巳 以全普門判三司事, 崔伯爲密直使商議.
고려사 > 卷三十八 > 世家 卷第三十八 > 恭愍王 元年 > 10월 > 고중서 등을 관직에 임명하다 1352년 10월 12일(음) 임자(壬子), 1352년 11월 19일(양) 고중서 등을 관직에 임명하다 임자 고중서(高仲瑞)를 개성윤(開城尹)으로, 이달충(李達衷)과 전보문(全普門)을 전리판서(典理判書)로, 차포온(車蒲溫)과 안우(安祐)를 군부판서(軍簿判書)로, 이야선첩목아(李也先帖木兒, 이에센테무르)와 허희(許禧)를 판도판서(版圖判書)로 임명하였다. [原文] 壬子 以高仲瑞爲開城尹, 李達衷·全普門爲典理判書, 車蒲溫·安祐爲軍簿判書, 李也先帖木兒·許禧爲版圖判書.
◎ 삼사[三司] 고려 시대에, 전곡(錢穀)의 출납과 회계에 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현종 5년(1014)에 도정사로 고쳤다가 14년(1023)에 환원하였으며, 공민왕 5년(1356)에 상서성으로 다시 고쳤다가 11년(1362)에 또 환원하였다.
◎ 판삼사사[ 判三司事 ] ①고려 시대 삼사의 으뜸 벼슬. 정원은 1인이었고 재신이 겸하였음. [참고어]삼사(三司). [네이버 지식백과] 판삼사사 [判三司事]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개인의견] 삼사(三司)의 장관을 삼사판사(三司判事)라고 해야 하나 판(判)을 앞에 두고 삼사(三司)를 중간에 두고 사(事)를 나중에 붙여 판삼사사(判三司事)라고 칭하였다고 이해하였습니다. 지금의 ‘기획재정부의 장관’으로 이해하였습니다.
◎ 전리사[ 典理司 ] 시행일시 1275년(1차), 1362년(2차), 1372년(3차) 폐지일시 1298년(1차), 1369년(2차), 1389년(3차) 정의 고려시대 중앙관부. 문관의 선임(選任)·공훈(功勳)·예의(禮儀)·제향(祭享)·조회(朝會)·교빙(交聘)·학교(學校)·과거(科擧)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 내용 1275년(충렬왕 1)에 원나라의 간섭으로 상서6부(尙書六部)의 상서이부와 상서예부를 병합하여 전리사를 설치하였다. 관원으로는 판서(判書)를 두고 그 아래에 총랑(摠郎)·정랑(正郎)·좌랑(佐郎)을 두었다. 1298년에 전조(銓曹)와 의조(儀曹)로 나누었다가 1308년에 다시 전조·의조·병조를 병합하여 선부(選部)를 설치하였고, 뒤이어 병조가 분리되어 따로 총부(摠部)를 이루었다. 1356년(공민왕 5)에 문종 때의 구제(舊制)로 복구하면서 이부와 예부로 나누어졌다. 1362년에 이부를 다시 전리사로 고쳤다가 1369년에 다시 선부로 고쳤고, 1372년에 다시 전리사로 고쳤다가 1389년에 이조(吏曹)로 고쳤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출처 제공처 정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 [네이버 지식백과] 전리사 [典理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개인의견] 지금의 ‘행정안전부장관’으로 이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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