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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병기(全炳基)
작성자 관리자 [2020-02-05 17: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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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석 전병기 (能石 全炳基) [慕薇齋記]


 

 

전비서랑(全秘書郞) 능석(能石) 병기(炳基)군이 지난 1928년 무진(戊辰)봄에 그 선조인 채미헌(採薇軒)선생이 충절(忠節)을 실천한 유적(遺蹟)을 방문하기 위하여 몸소 개성 서쪽의 두문동(杜門洞)을 찾았다.

대개 선생은 고려조의 운()이 다하던 날을 당하여 동지제공(同志諸公)과 더불어 묵태씨(墨胎氏)가 수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 꺾던 뜻을 본받아 이 동리(洞里)로 도망쳐 들어와서 자정(自靖)을 맹세하니 곧 세상에서 칭하기를 72현이라 하였으며 선생은 그 중의 한 분으로 동리(洞里)의 득명(得名)이 이로써 시작됐다.

 

이로부터 고도(故都)에 안주(安住)하는 제현(諸賢)의 후예(後裔)들이 동리(洞里)에 합향(合享)하는 단()을 창건하여 한 해에 일천(一薦)으로 하였는데 의식(儀式)이 아직 무무하여 다만 한 잔 술에 한 매의 저()를 쓰니 초초(草草)하여 단위(單位)에 드리듯 하였으므로 군()이 그 간만(簡慢)함을 개탄(慨嘆)하였습니다.

곧 많은 금액을 희사(喜捨)하여 작()과 저()등 각 72건을 구입하는 동시 향로(香爐)와 어합(魚盒) 변두(籩豆) 촉대(燭臺) 등을 모두 갖추어 엄숙하게 향의(享儀)를 치룰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때 표절비각(表節碑閣)을 봉심(奉審)하여보니 홀연(忽然)히 비면(碑面)에 물기가 흥건하여 땀과 같았으므로 곁에서 보는 사람마다 모두 차탄(嗟歎)하여 이상(異常)하게 여겼다. 이는 제현(諸賢)의 영령(英靈)이 군()의 추모하는 생각에 감응(感應)한 바라 하였다.

 

전판돈령원사(前判敦寧院事) 해관(海觀) 윤용구(尹公用九)씨가 그 일에 관한 전말을 듣고 그 성의(誠意)를 가상(嘉賞)하여 손수 모미재(慕薇齋)라 써서 증정(贈呈)함은 장후(獎詡)하는 뜻을 표시함이라 하겠다.

()은 더욱 송구하여 감히 받을 수 없다고 하였으나, 또 감히 현공(賢公)이 내린 것을 모독할 수 없다하여 드디어 그의 집에 걸고 나에게 기문(記文)을 부탁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고사리는 풀 종류이면서 그 씨가 심히 미세하여 자연스러우며 곧고 맑아서 성인이 그 이름을 채택하여 크게 알려져 드디어 충의가(忠義家)의 표방(標榜)이 되었는데 군자의 연()과 은일(隱逸)의 국화와 더불어 덕()은 같으면서 의취(意趣)가 다를 뿐이다.

이것을 선생이 취하여 호()를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미()가 번영하거나 병드는 것은 충신(忠臣)과 상수(相須)하기 때문에 서산가(西山家)가 끝난 지 수천재지후(數千載之後)에도 뜻을 숭상하는 서맹(誓盟)이 두내지(杜內誌)에 이어 남은 것과 같이 즉 채미헌(採薇軒)의 업적이 이와 같이 빛났으니 선생의 충()은 실로 백이숙제(伯夷叔齊)두 분과 같다고 하겠다.

이로부터 500여년이 지나 마침 천하가 번복된 오늘에 모미(慕薇)의 현판(懸板)을 또 이 친구의 재()에 걸게 되었으니 아! 아름답구나. 이는 묵태가(墨胎家)에서 들어보지 못한 것으로 선생에게 더욱 빛날 일이다.

 

()과 같은 이는 가위(可謂) 채미헌(採薇軒)의 초손(肖孫)이요 미()는 진실로 군가(君家)의 장물(長物)이라.

오호(嗚呼)! 백이(伯夷)의 인()을 공자가 인정하였으나 숭상하지 않았으되 선생의 절의(節義)는 국사에 소상(昭詳)하게 실렸음으로 가히 스스로 속이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현판(懸板)에 이르러서는 또 당세(當世)의 장덕(長德)한 명공(名公)의 수필(手筆)을 얻었으니 또한 후생(後生)에 족히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군()의 추모함이 다만 명현(名賢)의 단소(壇所)를 갖추어 높이 나타나게 할 뿐이었겠느냐 장차 선생의 유지(遺志)를 추모하려면 남은 고사리를 캐다가 수양산(首陽山) 꼭대기에 심어 세상에 널리 알리면 가히 방명(芳名)을 태사(太史)에 전하고 서행(西行)의 기록하여도 드리움에 궁()함이 없을 터인즉 다시 어찌 무엇을 기다리느라고 재()에다가 걸겠는가

 

만약 그 비에 땀이 난 일을 사람이 혹 그 이치를 의심하거든 예전 순()임금의 비()가 흘린 눈물이 죽지(竹枝)에 뿌려서 피로 물들였으며 효자가 잡혀하는데 목상(木像)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니 정성(精誠)이 이르는 곳에 귀신(鬼神)이 감동하는 류()는 이와 같이 많음으로 이는 가히 군()의 추모하는 진실을 징험(徵驗)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서기 1930년 경오 복월(復月) 하한(下澣)

 

靑居散人 光山 鄭泓林 盥薇遂書于楣之左方

 

4대 전씨대동종약원 종약장 전병기(全炳基) [1872~1936]

() 능석(能石) 시조로부터 45세손이며 채미헌공 휘() 오륜()17세손으로 서울

특별시에서 18721022일 출생, 승훈랑비서원비서랑(承訓郞秘書院秘書郞)을 역임하였다.

1917년 면조(冕朝), 성욱(聖旭) 종약장과 함께 전씨대동종약의 창립과 발전에 헌신 1등 특별유공종약원으로 추대, 숭앙받으며 제4대 종약장으로 빛나는 공적(功績)을 남기셨다.

특히 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동 시조 환성군 단소와 숭인재 부지 임야 19반과 기와집, 연못 등을 대종종약소에 무상기증, 전씨대종종약의 재정적인 기틀을 마련, 현재에 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남을 돕는 일에 헌신, 평생을 바친 독지사업가이시다.

1936222일에 별세하시고 화장하였으며, 2007년 이문동에 공적비를 건립하였다.

정보(町步)

땅 넓이의 단위. ()으로 끝나고 우수리가 없을 때 쓴다. 1정보는 3,000평으로 약 9,917.4에 해당한다. [비슷한 말] ().

[제 개인적인 의견]

가로100m 세로100m 정도의 정사각형 면적이라고 생각하고 가장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초등학교 운동장정도의 넓이라고 막연히 추측하고 있습니다.

 

비서랑[秘書郞]

요약

고려·조선 말기·대한제국 때 관직.

고려시대 경적(經籍)과 축문(祝文)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비서성(秘書省)의 종6품 관직으로 정원은 1명이다. 충선왕이 충렬왕으로부터 선위를 받아 관제를 개혁할 때(1298) 비서성을 비서감으로 관격을 격하해서 개칭하고, 비서랑을 종7품으로 내렸다. 1308년 비서감이 다시 전교서(典校署)로 격하되어 예문관에 소속되면서 직제상 명칭은 사라졌지만, 그 기능은 전교랑으로 계속 유지하였다. 1356(공민왕 5) 다시 비서감으로 바뀌면서 품계는 종7, 정원 2명이 되었다.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는 궁내부 소속 비서감·비서원의 관직이었다. 승선원이 폐지되면서 그 기능의 일부가 비서감으로 이관되었다. 비서감에는 중승(中丞), (), ()의 관직을 두었는데, 비서감랑은 4명 이하로 판임관이었다. 1902년 비서원의 기능이 확대 강화되면서 궁내부 관제에서 비서원랑의 임무를 법적으로 규정하였다. 상관의 지휘하에 비서원 업무에 종사하며 사첩(史牒)을 담당, 처리하였다.

1905년 궁내부 관제가 일제의 의도대로 개편되었을 때 비서원은 비서감으로 바뀌었고, ··낭의 관직 체계는 그대로 이어졌다. 다만 비서감랑이 종전 판임관에서 주임관이 되었다. 1907년 궁내부 관제 개정 때 폐지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서랑 [秘書郞] (두산백과)

 

전오륜[全五倫]

고려 말기의 문신이다. 공양왕 때 대제학을 지냈으며, 이색·정몽주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조선이 개국하자 두문동으로 들어갔다가 정선의 서운산으로 옮겼으며, 훗날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았다.

본관: 정선(旌善) , : 채미헌(採薇軒)

[네이버 지식백과] 전오륜 [全五倫] (두산백과)

 

묵태씨(墨胎氏)

백이[伯夷]

지조와 정절의 대명사

요약

중국 고대 전설적인 성인

백이는 상()나라 말기 고죽국의 제7대 군주였던 아미(亞微)의 장자이다. 국성(國姓)은 자(), 성은 묵태(墨胎), 이름은 윤()이며, 자는 공신(公信)이라 했다.

주 무왕이 결국 상나라를 멸망시키자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백성이 되는 것은 치욕이라며 수양산에 은거하며 고비(, 산나물의 일종)를 꺾어 먹다가 굶주려 죽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이 [伯夷, Bó Yí] - 지조와 정절의 대명사 (중국인물사전,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윤용구[尹用求]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서화가. 글씨와 그림에 뛰어나 해서·행서·금석문(金石文)을 많이 썼으며, 죽란(竹蘭)도 잘 그렸다. 글씨에 문간공한장석신도비(文簡公韓章錫神道碑)(果川) 선성군무생이공신도비(宣城君茂生李公神道碑), 그림에 묵죽(墨竹)등이 있다.

본관 해평(海平). 자 주빈(周賓). 호 석촌(石村해관(海觀장위산인(獐位山人). 1871(고종 8) 정시문과에 급제, 검열(檢閱)에 임명되었고, 예조·이조 판서를 지냈다. 법부·탁지부·내무 대신에 10여 차례 임명되나 모두 사절하고, 서울 근교 장위산(獐位山) 밑에 은거하였다.

글씨와 그림에 뛰어나 해서·행서·금석문(金石文)을 많이 썼으며, 죽란(竹蘭)도 잘 그렸다.

국권피탈 뒤 일본정부가 남작을 수여하려고 하였으나 거절하였다. 글씨에 문간공한장석신도비(文簡公韓章錫神道碑)(果川) 선성군무생이공신도비(宣城君茂生李公神道碑), 그림에 묵죽(墨竹)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윤용구 [尹用求] (두산백과)

 

수양산에 은거하다 세상을 떠나다

백이와 숙제는 서주(西周) 문왕(文王)이 덕이 있다는 말을 듣고 문왕에게 귀의하려 했다. 그러나 문왕이 이미 죽은 후 즉위한 그의 아들 무왕이 천명(天命)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상나라의 주왕을 정벌하려 했다. 백이와 숙제가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아버지 장례도 치르지 않은 채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하며 만류했으나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침내 무왕이 상나라 주왕을 쳐서 멸망시키고 말았다. 이에 두 사람은 주나라 백성이 되는 것은 치욕이라며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수양산1)에 은거하여 나무껍질로 옷을 해 입고 고비(, 산나물의 일종)를 캐먹다가 굶어죽고 말았다.

죽기 전에 두 사람은 <채미가> 또는 <백이조(伯夷操)>라고 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사리를 꺾는도다.

포악한 것으로 포악한 것을 바꾸고도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신농(神農), (), ()의 시대는 홀연히 지나가버렸으니

우리는 장차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 이제는 죽음뿐이로다.

쇠잔한 우리의 운명이여!

[네이버 지식백과] 숙제 [叔齊, Shū Qí] - 지조와 정절의 대명사 (중국인물사전,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천재 (千載)

[명사] [같은 말] 천세(千歲)

(1. 천 년이나 되는 세월이라는 뜻으로, 오랜 세월을 이르는 말).

 

薇蕨餓首陽 粟馬資歷聘

(백이 숙제는 고비와 고사리로 수양산에서 굶주렸고, 소진과 장의는 좁쌀 먹이는 말로 6국을 찾아 다니는 밑천을 삼았네.)

<두보(杜甫) 조발(早發)>

[네이버 지식백과] 백이숙제 [伯夷叔齊] (한시어사전, 2007. 7. 9., 국학자료원)

 

[]

제사나 연회시에 사용되던 의례용(儀禮用) 술잔의 한 종류

[네이버 지식백과] [] (열국지사전, 2001. 6. 15., 솔출판사)

 

초초하다 (草草--)

1.몹시 간략하다.

2.갖출 것을 다 갖추지 못하여 초라하다.

3.바쁘고 급하다.

 

간만[簡慢]

간만하다(데면데면하고 게으르다)’의 어근.

 

변두(籩豆)

: 죽제기(대나무로 만든 제기)

: 목제기

 

차탄하다 (嗟歎--/嗟嘆--)

[동사] 탄식하고 한탄하다.

 

獎詡 (장후)

장허. 권장(勸獎)하여 추어 줌

 

제기 이름 변

1. 제기(祭器)의 이름 2. (대오리를 결어서 만든 과실을 담는 제기(祭器))

 

자랑할 후, 자랑할 허

1. 자랑하다 2. 두루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3. 크다 4. 날래다 5. 아리땁다 6. a. 자랑하다 () b. 두루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 c. 크다...

 

문미 미

1. 문미(門楣: 창문 위에 가로로 댄 나무) 2. 처마(지붕이 도리 밖으로 내민 부분) 3. 차양(遮陽: 처마 끝에 덧붙이는 좁은 지붕) 4. 도리(서까래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나무)

 

빨래할 한, 열흘 한

1. 빨래하다 2. 빨다(주물러서 때를 없애다) 3. 발을 씻다 4. 열흘, 10() 5. 고비 사막(沙漠砂漠), 한해(澣海)

 

복월[復月]

복월(復月)은 양의 기운이 회복된 달이라는 뜻으로 음력 11월을 달리 부르는 말. 신양(新陽), 양복(陽復), 선양(線陽), 일선양(一線陽)이라고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복월 [復月]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하한 (下澣)

[명사] [같은 말] 하순1(下旬)(한 달 가운데 21일에서 말일까지의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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