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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채미헌 전오륜 묘비문
작성자 관리자 [2020-02-03 20: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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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법판서 채미헌(採薇軒) 전선생의 휘는 오륜(五倫)이고 자는 중지(仲至)이며 채미헌(採薇軒)은 그 호이다. 본관은 정선이니 두문동72현의 한 분으로서 망복충절(罔僕忠節)이 천추에 빛나므로 후세 군자의 추앙이 지속되어 오는 바다.

상계는 백제건국 십제공신 환성군 휘()을 시조로 하여 그 명공거경(名公巨卿)이 연면(連綿)하고 손세번연(孫勢蕃衍)하여 명문거족(名門巨族)이라 칭한다.

 

신라조(新羅朝)에 동문명신(同門名臣) 정선군 휘 ()과 고려조 충렬공 휘 이갑(以甲) 충강공 휘 의갑(義甲) 충달공 휘 ()은 그 훈공이 세사(世史)에 빛나는바 선생은 충렬공의 14세손이다.

왕고(王考)의 휘는 우화(遇和)이며 추충보절 동덕찬화 공신 삼한삼중 대광 문하시중(推忠保節同德贊化功臣三韓三重大匡門下侍中)이고 고의 휘는 분(賁)이며 호는 두암(杜菴) ()은 삼사 좌사 좌참찬 문충보절보리공신(三司 左使 左參贊 文忠保節保理功臣)으로 평간(平簡)이다. ()는 정경부인 안동권씨이니 화원군(花原君) 충헌공(忠憲公) 중달(仲達)의 여()이다.

 

선생은 충숙왕때에 출생하여 천자순후(天資純厚)하고 지기영매(志氣英邁)하여 자유(自幼)로 효행이 독실하고 학문과 덕행 초범(超凡)하여 공민왕 6년에 국자진사(國子進士)9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 외직으로 합천군수, 진주목사, 경상도안렴사를 역임하고 내직으로 수찬관, 춘추관편수관, 국자감제주, 성균관사성, 보문각제학, 우부승지밀직사우대언, 진현관대제학, 우산기상시, 전공판서, 전법판서, 예문각대제학, 정당문학, 상의회의도감을 고루 역임하시고 품계로는 정의대부, 간의대부, 광정대부, 봉익대부에 이르고 수충론도좌명공신(輸忠論道佐命功臣)으로 익찬공신(翊贊功臣) 등을 받았다.

 

고려조가 운흘(運迄)하고 조선조가 창건되니 두문동 자정동지(自靖同志)와 더불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맹서(盟誓)하여 자서왈(自叙曰) 伯夷採薇而餓하니 其志可尙이라 하였으며 그 후 이태조가 초유(招諭)하였으나 이에 불응한 이유로 본향안치령(本鄕安置令)을 내리니 七賢同志인 김충한, 고천우, 이수생, 변귀수, 신안, 김위 등과 함께 정선군 서운산에 은둔하여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매월 삭망에는 조복을 정제하고 산정에 올라 송경을 향하여 배례하고 國破君亡의 한을 애통하였으며 그 술회시(其述懷詩)

 

東來朝服在臣時 

遙望松京哭滿巾 

唐堯世遠吾安適 

 矯首西山繼絶塵

 

이라하여 비분강개(悲憤慷慨)함을 시로서 자위하고 충절을 더욱 견지하였다.

당시의 이 시들이 방방곡곡에 메아리쳐 민요로 전환되니 이것이 곧 정선아리랑의 시원이 된 것이다.

()는 정경부인 진양 류씨(柳氏)이니 청천부원군 번()의 따님이며

45여를 두시니 장남 맹겸은 합천군수 및 상호군이며, 숙겸은 석성현감이요. 유겸은 통천군수요. 계겸은 상주목사를 각각 역임하였다. 女長은 광산군(光山君) 金子贇의 아들 한로(漢老) 로 함양(咸陽) 박습(朴習) 병조판서, 수안(遂安) 이흡(李洽) 판전농시사, 원주(原州) 변현(邊顯)은 판사, 전주(全州) 최중온은 판관이다.

 

선생은 당시명성이 높으신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척약재 김구용 제현과 도의지교(道義之交)를 삼고 수시로 학문의 진수를 논하였으며 예제정립에 뜻을 두고 조정에 간하여 백일단상(百日短喪)3년제로 개정하고 몸소 3년 거려(居廬)를 선행하였으며 임금을 충성으로 섬기며 잘못이 있으면 간쟁을 서슴지 아니하였으며 밖으로는 외적의 방어로 안민(安民)을 도모하고 거민(居民)을 위무구휼(慰撫救恤)하여 치적이 지대하니 칭송이 높았다.

 

목은께서 자설(字說)을 지어 선생을 찬양하였으며 구정충록 임영야사(九貞忠錄 臨瀛野史)에 그 사실이 명제되어있다. 후일 국가에서 포전(褒典)이 있어 불조현(不朝峴)에 비를 세우고 두문동에 치제(致祭)하였으며 사림이 서산서원에 향사하였으니 그 충절의 역사는 영구 불멸하는 것이다.

 

묘는 합천군 봉산면 원촌리 소룡산록에 모셨으나 국가시책에 의한 합천다목적저수지공사로 수몰하게 되어 서기 1986429일 본향인 정선군 서운산록 갑좌원에 면봉(緬奉)함에 있어 600여년이 경과된 유해가 발굴되니 실로 감개무량하여 그 높으신 유덕을 길이 보전하기 위하여 첨종(僉宗)과의 협의로 묘비를 건립함에 있어 비문을 후학에게 의논하므로 선생의 행장을 살피건대 여오선조(與 吾先祖) 호조전서 박침(朴忱)과 망복동맹(罔僕同盟)하신 충절신(忠節臣)으로 당시의 교옥(喬獄)과 같은 무거운 두절(杜節)을 추모하면서 다음과 같이 간술하노니

 

繼以銘曰 

義重泰山이요 忠貫萬歲로다.

杜門朝天이요 陽笠戴蔽라 

誓心罔僕하고 名言所詣로다

旌善取月이요 瑞雲忘世로다

薇蕨貞志夷齊節例

垂憲竹帛이요 千載薦弊니라.

 

서기 19861018

 

성균관 관장 밀양후인 박중훈 근찬(成均館 館長 密陽后人 朴重勳 謹撰)

예천후인 권창륜 근서 (禮泉后人 權昌倫 謹書)

사단법인 전씨중앙종친회장 전중윤 후손 일동 근수

(社團法人 全氏中央宗親會長 全仲潤 後孫 一同 謹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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