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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천서원 상량문(寒泉書院 上樑文)
작성자 관리자 [2020-02-03 20: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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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서원 상량문(寒泉書院 上樑文)

 


 

태산북두(泰山北斗)와 같이 동방(東方)에서 일찍부터 광세지재(曠世之才 :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비범한 재주)를 지녔으며 여럿의 여망(輿望)을 받은 그 향기(香氣)가 남녘 글방에 그윽하니 명궁(明宮)의 성대한 의식(儀式)을 올리게 되었구나.

모두들 다 모여서 새로운 묘우(廟宇)에서 시경(詩經)과 예도(禮度)를 강론(講論)하니 영령(英靈)의 충만(充滿)함이 여기에 있는 듯하고 저편 빈터 동수(桐藪)의 사적(事蹟)을 돌아보니 황홀하게 빛나는구나.

 

조정(朝廷)에서 은혜를 베푼지 오래 되었는데 향인(鄕人)들은 이제야 제사(祭祀)를 올리게 되었구나.

어찌 시대가 다르다고 간극(間隙)이 있겠는가. 옛적에 벌서 했어야 할 일인데 삼가 생각해 보건데 고려(高麗) 태사(太師) 충렬공(忠烈公), 충강공(忠康公) 전선생(全先生)은 대대로 벼슬을 이어왔고 효도(孝道)와 우애(友愛)로 명성(名聲)이 높았다. 국가(國家)의 운기(運氣)를 타고 산천(山川)의 정기(精氣)를 몰아 받았으니 신인(神人)의 이상한 꿈이 이루어져서 문무(文武)를 겸비하였고 학사(學士)의 명성(名聲)이 오늘까지도 남아 있구나.

 

형제는 태조(太祖)가 잠저[潛邸 :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임금이나 종실(宗室)에서 들어온 임금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사는 집]에 있을 때 만나서 비로소 언약(言約)을 맺고 서로 도왔으며, 삼한(三韓)이 솥발처럼 나뉘었을 즈음에는 칼과 도끼로 풀을 베듯 적()을 무찔러 임금을 도와 충성(忠誠)을 다하였고 세상을 구제할(救濟)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자임(自任)하다 나라를 위해 죽임을 당하니 능히 위질지신(委質之臣 :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신하)이라 할 것이요, 신하가 임금을 위하여 죽은 것은 전한(前漢)의 기신(紀信)이 초()나라를 속인 것만 아름답다 할 수 없게 하였고, 형제가 함께 순국(殉國)함은 당()나라 안씨(顔氏)가 적()을 꾸짖다 죽은 일과 그 의기(義氣)로움이 나란하더라.

 

녹훈(錄勳 : 임금이나 나라를 위해 세운 공로를 장부나 문서에 기록함)하는데 있어서는 같이 벽상공신(壁上功臣)에 포함되고, 태사(太師)가 적()에 대해 분개(憤慨)하는 마음은 산()의 남쪽에 모여들더라. 세 가지 대절[大節 : 대의(大義)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지키는 절개]은 동토(東土 : 우리나라)를 태산(泰山)과 반석(盤石) 위에 올려놓았으며 이 나라 백성에게 혜택(惠澤)이 미치니 일성(日星)이 중천(中天)에 있는 듯 광채(光彩)가 후세(後世를 덮었으니 고려에서는 이름을 바꾸어 추작(追爵 : 추증)하는 은총(恩寵)을 아끼지 않았고, 조선조(朝鮮朝)에 이르러서는 공()을 보답하고 포상(褒賞)하는 은전(恩典)을 베풀었다.

 

지묘사(智妙寺)를 창건(創建)하고 화상(畵像)을 그려 금주(金鑄 : 금으로 이름을 새김)로 새기는 옛 제도를 따랐으며, 태산이 닳을 때까지 철권(鐵券 :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들의 공적과 그에 따른 상훈을 기록한 서책. 공신에게 나누어 주었다)을 내려 공()을 잊지 않으리란 약속을 하는 옛 규범(規範)을 따랐으나 다만 충성(忠誠)을 표창(表彰)하는데 있어 사우(祠宇)가 없음을 한탄(恨歎)하였다.

 

항상 병향(倂享)하는 의식(儀式)을 생각함에 있어 대개 포상(褒賞)이 누락(漏落)되고 의전(儀典)을 잃어버림은 때에 따라 현회(顯晦 : 세상에 알려지는 것과 알려지지 않는 것)함에 달려있었다.파군치(破軍峙)에는 원숭이와 학()이 공연히 열사(烈士)의 명성(名聲)을 전할 뿐이고, 팔공산(八公山) 초목(草木)은 그저 행인(行人)이 손가락으로 가리킬 뿐이다.

 

생각이 간절하면 우모[寓慕 : 재사(齋舍)]할 땅이 없을 수 없고 성심(誠心)을 다하면 또한 반드시 치성(致誠)할 일이 있으니 여기에 입절(立節 : 한평생 절개를 굽히지 않음)하신 고을을 취()하여 특히 편히 제향(祭享)하실 궁실(宮室)을 마련하였으니 많은 선비들이 분발(奮發)하여 협력하고 모두가 함께 도모(圖謀)함은 대개 오랜 세월동안 무수히 생각했던 일이었으니 후손(後孫)이 서로 치하(致賀)하며 역사(役事 : 토목이나 건축 따위의 공사)를 감독(監督)하여 며칠 안에 준공(竣工)하게 되었다.

 

흘러내린 물에 깎인 돌을 늘어놓아 든든한 기초(基礎)를 만드니 번쩍번쩍 빛이 나고 나무는 큰 집을 지탱하는 재목(材木)으로 화려하게 세우니 아름답기 그지없고 찬연(燦然)함은 난봉(鸞鳳 : 난새와 봉황)이 나는 듯하여 오색(五色)이 찬란한 새가 푸드득 날아가는 형상(形象)이로구나. 그러나 쇠초한연(衰草寒烟 : 황폐화된 정경)에 영정(影幀)과 업적(業績)이 몇 년이나 묻혀 있었으니 굳은 절개(節槪)를 나타냄이 아득히 멀어져 이에 격앙(激昻)함이 오늘날 모든 이들의 마음이다.

 

만고(萬古)의 강상(綱常 : 삼강과 오상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의 가르침에 의지해 우뚝하고 크게 여기에 세웠으니 천년의 한()을 벗어던지리.

창망(蒼茫)하고 황망(荒亡)함을 만나 그 빛이 나타나지 않다가 맑고 성()스러운 묘우(廟宇)가 백세(百世) 후에 이루어졌으니 모두가 그 늦었음을 안타깝게 여기던 중 사당(祠堂)이 더 높고 아름답게 세워지니 고절(苦節 : 어떠한 고난을 당하거나 어려운 지경에 빠져도 변하지 않는 굳은 절개) 또한 서로의 마음에 드러나더라.

 

북쪽으로 동수산(桐藪山)을 바라보니 한월(寒月 : 추운 겨울)에 공성(空城)을 조상(弔喪)하는 듯하고 서쪽으로 송악(松嶽)을 바라보니 유수(流水)는 옛 나라 생각에 목이 메니 정령(精靈)이 거침없이 왕래(往來)하시며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시어 친히 맑은 소리를 내시니 이에 의지(依支)하여 부로(父老 : 동네에서 나이가 많은 남자 어른)의 말로 감히 아랑(兒郞 : 상량할 때 다같이 부르는 노래)을 읊어본다.

 

어기여차 대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깎아지른 우령(羽嶺)고개 창공에 솟아있고 견주어 바라보니 먼 옛날의 영령(英靈)께서 돌아와 계시는 듯 정기(精氣)가 당당하여 산악(山嶽)같이 높았구나.

 

어기여차 대들보를 남쪽으로 던져보니 옥계(玉溪)의 흐른 물은 쪽빛을 다투는 듯하고 천경[千頃 : ()은 밭넓이. 넓은 면적의 밭]을 흘러도 탁한 물이 뒤섞이지 않으니 거울같이 맑은 물에 소월(素月 : 밝고 하얀 달)이 잠겼더라.

 

어기여차 대들보를 서쪽으로 던졌더니 상산(常山)이 어드메냐 물으니 난형난제(難兄難弟)라 예나 지금이나 몸을 바쳐 순절(殉節)한 절의(節義) 한결같다.

 

어기여차 대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니 금호(琴湖 : 금호평야)의 물은 목이 메어 흘러 그 한()이 끝이 없으니 이리로 끌어다가 그동안 쌓인 한() 금년에 말끔히 씻기고자 하니 긴 세월 영웅(英雄)들 생각하는 감회(感懷)가 서로에게 서리더라.

 

어기여차 대들보를 위쪽으로 던지니 태산북두(泰山北斗) 하늘까지 만장(萬丈)으로 솟았으니 그 가파름이 무엇과 상응(相應)할지 알지를 못할세라 두 분의 높은 업적(業績) 드러남에 능히 분발하여 사모(思慕)하네.

 

어기여차 대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유음(遺蔭 : 죽은 사람에게서 받은 은혜)에 봄은 깊어 화수(花樹 : 종친들의 모임)가 우겨졌네. 추로지향(鄒魯之鄕 :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라는 뜻으로, 예절을 알고 학문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을 이르는 말)에서 강학(講學)할 곳 마련하니 나날이 현송(絃誦 : 부지런히 학문을 닦고 교양을 쌓음)하는 그 소리 아름답구나.

 

엎드려 원하옵건데 상량(上樑)한 뒤에는 세도(世道 :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를 많이 따름으로써 모두가 훈업(勳業)과 노고(勞苦)를 마땅히 갚을 줄 알게 하옵고, 풍속(風俗)을 교화(敎化)하여 모두가 강상(綱常)이 펼쳐지는 곳엔 마땅히 보답(報答)이 있게 하옵소서.

춘추(春秋)로 향화(香火)가 이어지며 조두(俎豆 : 제사 때 음식을 담는 그릇의 하나)로 향사(享祀)하는 의전(儀典)에 그릇됨이 없게 하옵시어 선비들이 마음대로 그만두는 허물이 없게 하옵소서. 후손(後孫) 모두에게 경사(慶事)로운 일이 많게 하시옵고 정성(精誠)과 공경(恭敬)을 지극히 다하면 선비의 재주로 대천(大闡 : 문과에 합격하는 일)할 수 있음을 모두에게 보여주시옵소서.

신명(神明)이 조용히 도와주시어 가히 방운[邦運 : 봉군(封君)되는 운수]이 영원토록 창성(昌盛)하기를 비나이다.

 

승지 노두광 삼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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