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천서원[ 寒泉書院 ] | |||
작성자 | 관리자 [2020-02-03 19:41:24] | |||
첨부파일 |
첨부된파일갯수 : 0개 |
|||
한천서원[ 寒泉書院 ]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동로 117[행정리 87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출처 디지털달성문화대전-한천서원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서원. 개설 한천서원(寒泉書院)은 충렬공(忠烈公)전이갑(全以甲)[?~927]과 충강공(忠康公)전의갑(全義甲)[?~927]을 배향하고 있다. 전이갑의 본관은 정선(旌善), 자는 자경(子經), 호는 도원(挑源)이다. 고려의 개국 공신이다. 927년(태조 10) 견훤의 침공을 받은 신라를 돕기 위하여 왕건과 함께 출정하여 동수산[현 팔공산]에서 싸우던 중 순절하였다. 전의갑은 전이갑의 동생으로 동수 전투에서 형과 함께 순절하였다. 위치 한천서원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동로 117[행정리 870]에 위치한다. 가창면사무소[달성군 가창면 가창로 1100]에서 가창로[가창교 방향]를 따라 약 140m 이동한 후 청도, 녹동 서원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약 2㎞ 직진한 뒤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행정교를 건너 행정로를 따라 약 2.1㎞ 이동하면 오른쪽에 한천서원이 있다. 변천 한천서원의 경우 자료마다 건립 시기에 대해 차이를 보인다. 『영남 읍지(嶺南邑誌)』의 경우 1840년(헌종 6)[경자], 『달성 군지(達城郡誌)』와 『교남지(嶠南誌)』는 1847년(헌종 13)[정미], 서원에 소장된 한천재 중건기(寒泉齋重建記)와 한천서원 복설기(寒泉書院復設記) 등의 현판은 1838년(헌종 4)[ 무술]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료의 소략으로 건립 연대를 명확하게 밝힐 수 없으나, 헌종 연간 사우(祠宇)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흥선 대원군 집권기 때인 1871년(고종 8) 훼철된 것을 1908년 자손들이 힘을 모아 몇 칸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1960년 전영기(全榮基) 등의 후손이 한성 대동 종약원(漢城大同宗約院)과 대구 종친회의 지원을 받아 한천재(寒泉齋)를 중건하였고, 1989년 한천서원으로 복원하였다. 형태 서원의 외삼문을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에 고려 태사시 충렬 전공 순절비(高麗太師諡忠烈全公殉節碑)가 있다. 비 뒤편으로 왼쪽에 강당인 한천서원과 오른쪽에 내삼문과 담장, 사당인 충절사(忠節祠)가 있다. 한천서원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 팔작지붕 건물이다. 충절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 맞배지붕 건물이다. 이 밖에 경내에 전 성균관 부원장 옥천 전공 병조 기공비(前成均館副館長沃川全公柄朝紀功碑)와 우물, 각종 기념수, 한천서원 지석묘 등이 있고 서원 바깥 마당에는 수령 700~800년 되는 은행나무와 육각 정자가 있다. 현황 한천재 중건기를 비롯한 한천서원 복설기, 상량문(上樑文), 전씨 유적서(全氏遺蹟序) 등의 현판을 소장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10일 유림 향사, 음력 9월 15일 후 둘째 일요일에 향사를 봉행한다. 참고문헌 『교남지(嶠南誌)』 『달성 군지(達城郡誌)』 『영남 읍지(嶺南邑誌)』 달성 마을지 편찬 위원회, 『달성 마을지』(달성 문화원, 1998) 한국 국학 진흥원, 『경북 서원지』(경상북도, 2009) 『대구의 뿌리 달성』(달성 문화 재단·달성 군지 간행 위원회, 2014)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한천서원 [寒泉書院]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