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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루기[蜃樓記]
작성자 관리자 [2022-10-04 20: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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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루기[蜃樓記]

학송 전유형

 

내가 예전에 바닷가에 살 때, 마침 늦은 봄이었는데 아침 해가 막 떠오를 무렵 손님이 밖에서 들어오며 바다가 이상하다고 말하였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홀연히 공중에 누각 수천 간이 잠깐 사이에 이루어져 바다 한 모퉁이를 덮어 눌렀다.

돌이 층층이 있고, 옥이 둘러쳐져 있으며, 크고 높고 가파르고 뾰족한 것이 먼 것은 아득하게 보이고 가까운 것은 영롱하게 보이는데 진시황이 새로 지은 아방궁처럼 다섯(5) 걸음에 누각이 하나 열(10) 걸음에 궁전이 하나 있는 것 같았다.

 

또 곧은 난간과 빗긴 난간과 복도와 긴 다리가 서로 버티어 얽히고 접해서 많고 많으며 찬란히 빛나니 한나라 무제의 건장궁(建章宮)과 초풍전(椒風殿)의 금쟁반이 공중에서 빛나는 것 같았고 신선의 손바닥이 쌍쌍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또한 붉은 대 마루와 푸른 서까래로 만든 집이 빽빽이 들어서 울쑥불쑥 드러나고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남조(南朝)의 사백팔십(480) 절(寺)에 많고 적은 누각 같았고, 천 길이나 되는 낭떠러지와 만 길이나 되는 절벽에 은은히 비치니 천상의 백옥경에 다섯(5) 개의 성 열두(12) 개의 누각 같았으며, 구슬발과 은 병풍이 구불구불하고 서로 비쳐서 계수나무로 만든 대궐에 옥으로 된 축대와 비슷하였다.

 

그러나 뒤돌아보는 사이에 홀연히 사라지니 다만 바람만 일고 연기만 일어 넓은 곳까지 물결쳤다.

 

손님이 이것을 신기루가 일으키는 것이라 하면서 “자네는 나를 위하여 기록해주게”라고 말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 매우 기이하기는 하나 갑자기 지나가 조금밖에 구경하지 못했으니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라고 하였더니,

 

손님이 말하기를 “세상에 많고 많은 좋은 집도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네.

인생을 달관한 사람들은 백(100) 세를 사는 것도 잠깐이라 하니, 그들이 보기에는 이 세상에 무척 좋은 집들도 어제 지었다가 오늘 뜯는 것이며 아침에 지었다가 저녁에 허무는 것이라.

달인들이 보기에는 이 또한 신기루라네. 사람들이 재물을 다 쓰고 힘을 다하나 끝내는 허무한 곳으로 돌아가니 신기루가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 이루는 것만도 못하지 않는가”이라고 하였다.

 

내가 또한 말하기를 “자네의 말이 정말 그렇구려. 신기루가 귀신의 힘을 빌려서 갑자기 나타났다가 없어졌다가 잘하니 한갓 누각만 되는 것이 아니라 혹 사람도 되고, 혹 말도 되고, 혹 소도 되고, 혹 사슴도 되고, 혹 호랑이도 되어 강회(江淮) 사는 사람 중에 그 해를 많이 받은 사람이 있었다 하네. 그러니 이를 기록하더라도 괴상한 말로 여기지는 않을 것일세”라고 하니,

 

손님이 말하기를 “물건의 형상을 보고 신의 간사함을 안다고 하니 자네는 대충 아름다운 문장과 글로써 귀신의 정상(情狀)을 다 표현하구려” 하였다.

이에 내가 웃으며 대답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를 그대로 바다 위에 있는 돌에 쓰노라.




 

 

蜃樓記

 

余嘗傍海而居値暮春朝日方昇客有漎外來談海恠未訖忽有空中樓閣數千間湏臾成覆壓海一隅碅層焉環瑋焉巃嵸焉穹崇焉遠者縹緲 近者玲瓏如秦始皇新起阿房宮五步一樓十步一閣直欄橫檻複道長橋枝撑而相紏擑孴而爛燁如漢武帝建童宮椒風殿金盤燿空仙掌雙立朱薨翠桶千門萬戶欝紆而㟪????熒煌而崛岉如南朝四百八十寺多小樓拿隱暎於千仞之崖萬丈之壁如天上白玉京五城十二樓珠箔銀屛逶迤而交暎桂殿瑤臺彷彿而可見顧眐之間倐然而滅但見風擧炯空驚浪萬里客曰此蜃之爲也子其爲我記之余曰雖甚奇也瞥然而過雖可玩爲玩幾何何所爲而記之客曰世間紛紛甲第亦未有異於此也達人以百歲爲湏臾以達人之見見世間甲第則有昨搆而今破者有朝作而暮毁者此亦一蜃樓也而殫人之財竭人之力終歸於虛無地頭又不如蜃之不假人力而成也余曰子言則誠然矣蜃之假鬼神善變幻非徒樓也或爲人或爲馬或爲牛或爲鹿或爲虎江淮人有多受其害者記之無乃近於語恠乎客曰象物所以知神姦也子盖以佳童麗什以盡鬼神情狀乎余乃笑而不答遂具本末書之于海上石

 

[출처] 학송일기

 


 

◎ 신기루 [ mirage , 蜃氣樓 ]

요약

물체가 실제의 위치가 아닌 위치에서 보이는 현상. 불안정한 대기층에서 빛이 굴절하면서 생긴다. 사막이나 극지방의 바다처럼 바닥면과 대기의 온도차가 큰 곳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신기루는 굴절현상으로 발생하며, 더운 공기와 찬 공기에 의한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더운 공기가 흐르는 여름철 오후에는 지면 온도가 몹시 높아진다. 이때 가열된 아스팔트 도로를 차가 달릴 때 전방의 노면에 물웅덩이가 보이면서 사람이나 가로수가 어른거리는 것 같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접근해감에 따라 곧 사라지고 얼마쯤 전방에 물웅덩이가 또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신기루의 일종이다. 특히 지표 가까운 기층의 기온 변화가 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1798년 이집트에 원정한 나폴레옹의 군사들은 분명히 보이던 호수가 소멸되고, 풀잎이 야자수로 변하는 광경 등 그곳의 기묘한 신기루 현상을 보고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다만 그중의 수학자 가스파르 몽주는 이 현상이 사막에 접해 있는 더운 공기층에 기인되는 현상임을 최초로 밝혀냈다.

 

앞에서와는 반대로 지표의 공기가 몹시 차갑고 그 위가 따뜻할 경우, 지표 부근의 뚜렷한 기온역전(氣溫逆轉)으로 인하여 광선이 굴절하여 먼 곳에 있는 실물이 솟아올라 보이거나 거꾸로 매달린 도립상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북극해 같은 곳에서 잘 나타나며, 대기의 조건에 따라 큰 야자수가 자그마한 풀잎이 되어 보이기도 하고, 해상에 떠 있는 작은 유빙(流氷)이 거대한 빙산으로 보이거나 자그마한 어장이 크고 화려한 궁전으로 변모하기도 하여 항해자나 탐험가들이 신비감에 이끌리기도 한다.

 

이밖에도 대기의 조건이 복잡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신기루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탈리아반도와 시칠리아섬 사이의 메시나해협에서는 공기의 온도가 높아지고 물이 잔잔해지면, 구름 위에는 아름답고 웅장한 항구도시의 모습이 반영되고, 다시 그 위에 제2, 제3의 도시가 솟아올라 현란한 탑이나 궁전 같은 것이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지표면 부근의 저공층과 상공에 더운 공기층이 있고 그 사이에 차가운 공기층이 끼어 있는 경우에 나타나게 되나, 아직도 그 정확한 실태와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기루 [mirage, 蜃氣樓]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진시황 [ 秦始皇 ]

재위기간

B.C.246~210

 

진(秦)나라의 36대 군주로 장양왕의 아들이며 본명은 정(政). B.C.247년에 부친 장양왕이 서거한 후 열세 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초기에는 승상(丞相) 여불위의 보필을 받았으나 장성하면서부터 점차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했음. 중국 역사상 가장 의욕적이고 명민하며 위대한 군주의 한 사람으로서 내로라 하는 문무 관료들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면서 전국 말의 혼란상을 종식시키고 6국을 각개격파하여 마침내 B.C.221년에 중국 역대 황제들의 업적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할 만한 천하통일을 달성했음. 통일을 이룬 직후 스스로의 공업(功業)을 상고(上古) 황금 시대의 신화적 성군(聖君)들인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업적과 견줄 만하다고 자부하면서 '황제(皇帝)'라는 새로운 칭호를 제정하고 '시황제(始皇帝)'라 자칭했음.

 

이어 신흥 진제국(秦帝國)의 통치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전국을 36군(郡)과 1,400여 개의 현(縣)으로 편성하고 각지에 군태수(郡太守)와 현령(縣令)을 파견하여 일찍이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었던 거대 규모의 중앙 집권을 강력히 추진하는 한편, 문자·화폐·도로·도량형을 통일하고 국론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 법가 일변도의 강력한 사상 통제 정책을 실시했음(분서갱유). 또한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전국 시대의 조(趙)·연(燕)·중산(中山) 등이 부분적으로 건축했던 북방의 장성(長城)들을 대대적으로 증축, 신축하여 유명한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상당 부분 완성했으며(오늘날의 만리장성은 명대(明代)에 최종 완성된 것임), 황제의 위엄과 권위를 만방에 과시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규모의 여산릉(麗山陵)과 아방궁(阿房宮) 등을 축조하게 하여 민력을 고갈시키기도 했음.

 

자신이 이룩한 신흥 통일 제국이 만세(萬世)까지 유지되기를 기원한 나머지 말년에는 신선술과 불로장생술에 심취하기도 했으나 자연의 섭리만은 정복하지 못해 통일을 이룬 지 불과 11년 만인 B.C.210년에 지방 순수(巡狩) 도중 서거했음. 고금에 보기 드문 강력한 카리스마와 통치력을 지녔던 진시황이 사망한 후 진제국은 그 업적을 계승할 만한 유능한 후계자를 찾지 못한 채 한순간에 와해되어 불과 5년 만인 B.C.206년에 멸망했음.

[네이버 지식백과] 진시황 [秦始皇] (열국지사전, 2001. 6. 15., 풍몽룡, 김구용)

 

 

◎ 아방궁 [ 阿房宮 ]

요약

중국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세운 궁전.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서쪽 아방촌(阿房村)이라는 한촌(寒村)에 있다. 시황제는 함양궁(咸陽宮)을 비롯하여, 그의 손으로 멸망시킨 육국(六國)의 궁전을 본뜬 육국궁 등 많은 궁전을 지어 미인과 즐겼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셴양[咸陽]의 대안(對岸)에 더 큰 궁전을 지으려고 하였다. 그 전전(前殿)이 아방궁으로, 규모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동서 약 693m, 남북 약 116.5m에 이르는 2층 건물에 판축기법으로 쌓은 기초의 동서 길이가 1,320m, 남북 420m, 높이 8m에 이른 것으로 추정한다.

 

건설에는 죄수 70만이 동원되었으나 시황제의 생전에는 완성되지 않아 2세 황제에 의해 나머지 공사가 진행되었다. 셴양 부근에 세워진 수백에 달하는 궁전군(宮殿群)은 2층으로 지은 복도와 담장 때문에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길로 종횡으로 이어져 아방궁에서 웨이수이강[渭水]을 건너 직접 셴양이나 난산[南山]의 정상에도 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황제들은 그 사이를 오가며 자기의 소재를 비밀로 하였다 한다. 아방궁을 포함한 이 궁전군은 BC 207년 항우(項羽)가 진나라를 멸망시켰을 때 불에 탔는데 불길이 3개월동안 꺼지지 않고 계속되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방궁 [阿房宮]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건장궁 [建章宮]

중국의 한(漢) 무제(武帝)가 지은 궁전 이름. 장안현(長安縣)에 있는데 천문만호(千門萬戶)가 될 정도로 규모를 크게 지었다고 함.

 

 

◎ 강회 [江淮]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일대. 지금의 강소성[江蘇省]과 안휘성[安徽省] 일대에 해당함.

 

◎ 백옥루 [ 白玉樓 ]

천상 세계(天上世界) 백옥경에 있는 누각. 문인(文人)이 사후에 간다는 누각이어서 ‘문인의 죽음’을 뜻하기도 함. 당(唐)의 시인 이하(李賀)가 죽을 때 천사(天使)가 찾아와 ‘상제(上帝)의 백옥루가 완공되어 너를 불러 들여, 그 기문(記文)을 짓도록 정했다.’ 하더라고 말했다 함.

이후 고인(故人)이 된 문사(文士)나 시인을 ‘백옥루중인(白玉樓中人)’이라 부르게 되었음.<서언고사書言故事>

[네이버 지식백과] 백옥루 [白玉樓] (한시어사전, 2007. 7. 9., 전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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