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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정선생(전팽령)의 시 (絶句)
작성자 관리자 [2021-08-21 21: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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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辰 先生 七十七歲

 

先生於退休後 雖隆寒盛暑 日必盥洗 上衣俱冠帶 潛心於格致誠正之工 對越小學及夙興夜寐箴等書 勅勵益嚴 因作二絶 自遣曰

 

初心賢聖擬同歸

善行嘉言矢莫違

未免鄕人成一老

徒知七十七年非

 

嘉訓堆床作舌耕

非斯無以樂餘生

老夫謹讀終何用

要祛胸中鄙吝萌

 

手撰 治身準繩二卷 羣書要語四卷 以獎進後學 一時名士 莫不移 謁門屏以 質所疑焉

 

 

 

병진(1556년) 명종11년 송정선생 77세

 

선생께서는 退休(퇴휴)한 뒤에도, 비록 혹독한 추위와 무더운 날씨에도 반드시 몸을 씻고 옷을 입고 띠를 띠고 格致(격치)와 誠正(성정)의 공부에 潛心(잠심)하고, 小學(소학) 및 夙興夜寐箴(숙흥야매잠) 등의 글을 對越(대월)하여 신칙(申飭)하고 힘쓰기를 더욱 엄하게 하여, 인하여 절구 두 수를 지어 읊었으니

 

“초심을 성현에 두고 함께 돌아감을 헤아렸는데

선행과 嘉言(가언)의 시위는 어기지 않았다네

시골 사람 못 면하고 한 늙은이가 되었으니

다만 칠십칠 년의 삶이 그른 것을 알았더라.

 

상(床)에 쌓인 아름다운 훈계로 舌耕(설경)을 하니

이것이 아니면 餘生(여생)이 즐거움이 없다네

노부의 근실한 공부를 장차 어디에 쓸꼬!

요컨대 흉중의 鄙吝(비인)한 싹을 떨어내려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손수 쓴 《治身準繩(치신준승》2권, 《羣書要語(군서요어)》4권을 써서 후학들을 獎導(장도)하여 내니 한때의 名士(명사)가 쫓지 않는 이가 없어서 문에서 배알하고 의심나는 것을 질의하였더라.

 

[출처] 송정선생문집

 



 

 

◎ 전팽령 [ 全彭齡 ]

이칭별칭/자 숙로(叔老), 호 송정(松亭)

유형/인물

시대/조선

출생 – 사망/1480년(성종 11) ~ 1560년(명종 15)

성격/문신

성별/남

본관/옥천(沃川)

대표관직(경력)/부호군, 상주목사

[네이버 지식백과] 전팽령 [全彭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융한(隆寒)

한겨울의 대단한 추위 혹은 대단히 추운 때. ≪경국대전≫에서는 11월 1일부터 이듬해 정월 그믐에 이르는 기간을 융한의 시기라 하여, 이때에는 일정한 처벌 한도 이내에 있는 사람은 속전(贖錢)을 받고 석방하도록 규정하였음.

 

◎ 盛暑 (성서)

한더위. 한창 심한 더위

 

◎ 盥洗 (관세)

제례(祭禮) 때에 집사관(執事官)이 손을 씻던 물대야

 

◎ 관대 冠帶

①관리들이 입는 의복에 대한 총칭으로 관리들이 쓰는 관면(冠冕)과 허리에 두르는 신대(紳帶)를 뜻함. 관리의 지위와 신분에 따라 그 색과 모양, 문양 등을 달리하였음. 관디(官帶)라고도 함. [유사어] 공복(公服). 관면의대(冠冕衣帶). [참고어] 관복(冠服). 단령(團領). [반대말] 포의(布衣).

②문물 제도를 총칭하여 부르기도 함.

한국고전용어사전

 

◎ 潛心 잠심

마음을 가라앉힘.

 

◎ 격물치지 [ 格物致知 ]

요약

중국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8조목으로 된 내용 중, 처음 두 조목을 가리키는데, 이 말은 본래의 뜻이 밝혀지지 않아 후세에 그 해석을 놓고 여러 학파(學派)가 생겨났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주자학파(朱子學派: 程伊川 ·朱熹)와 양명학파(陽明學派: 陸象山 ·王陽明)이다.

주자는 격(格)을 이른다[至]는 뜻으로 해석하여 모든 사물의 이치(理致)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致知]고 하는, 이른바 성즉리설(性卽理說)을 확립하였고, 왕양명은 사람의 참다운 양지(良知)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물욕(物欲)을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하여, 격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풀이한 심즉리설(心卽理說)을 확립하였다.

즉, 주자의 격물치지가 지식 위주인 것에 반해 왕양명은 도덕적 실천을 중시하고 있어 오늘날 주자학을 이학(理學)이라 하고,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고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격물치지 [格物致知] (두산백과)

 

◎ 대월 [ 對越 ]

제왕이 천지 신령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가리킴.

출처: 한국고전용어사전

 

→ 상대(相對)하여 상대방을 높이는 일(越等), 즉 글을 대하면 귀중하게 생각하고 정성스럽게 공부하는 모습이라고 이해함(전과웅)

 

◎ 소학 [ 小學 ]

정의

송나라의 유자징이 8세 안팎의 아동들에게 유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1187년에 편찬한 수양서.

 

서지적 사항

송나라 주자(朱子)가 엮은 것이라고 씌어 있으나 실은 그의 제자 유자징(劉子澄)이 주자의 지시에 따라 편찬한 것이다.

1187년(남송 순희 14)에 완성되었으며, 내편(內篇) 4권, 외편(外篇) 2권의 전 6권으로 되어 있다.

 

내용

내용은 일상생활의 예의범절, 수양을 위한 격언, 충신·효자의 사적 등을 모아 놓았다.

명나라 진선(陳選)의 ≪소학집주 小學集註≫ 6권을 비롯하여 명·청 나라에 주석서가 많이 나왔으며, 우리 나라에도 일찍이 들어와 사대부의 자제들은 8세가 되면 유학의 초보로 이를 배웠다.

≪소학≫은 유교사회의 도덕규범 중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내용을 가려 뽑은 것으로서 유학교육의 입문서와 같은 구실을 하였다.

주자에 의하면 ≪소학≫은 집을 지을 때 터를 닦고 재목을 준비하는 것이며, ≪대학≫은 그 터에 재목으로 집을 짓는 것이 된다고 비유하여 ≪소학≫이 인간교육의 바탕이 됨을 강조하였다.

그 내용은 내편은 입교(立敎)·명륜(明倫)·경신(敬身)·계고(稽古), 외편은 가언(嘉言)·선행(善行)으로 되어 있다.

입교는 교육하는 법을 말하는 것이고, 명륜은 오륜을 밝힌 것이며, 경신은 몸을 공경히 닦는 것이고, 계고는 옛 성현의 사적을 기록하여 입교·명륜·경신을 설명한 것이다.

가언은 옛 성현들의 좋은 교훈을 인용하고, 선행은 선인들의 착한 행실을 모아 입교·명륜·경신을 널리 인용하고 있다. 즉, 쇄소(灑掃)·응대(應對)·진퇴(進退) 등 어린아이의 처신하는 절차부터 인간의 기본 도리에 이르기까지 망라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 ≪소학≫이 중시된 것은 조선 초기부터이다. 어릴 때부터 유교 윤리관을 체득하게 하기 위하여 아동의 수신서로서 장려되어, 사학(四學)·향교·서원·서당 등 당시의 모든 유학 교육기관에서는 이를 필수 교과목으로 다루었다.

권근(權近)은 ≪소학≫의 통달을 강조하면서 먼저 ≪소학≫을 읽은 다음에 다른 공부를 할 것이며, 성균관에 입학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소학≫의 능통 여부를 알아본 다음에 시험에 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김굉필(金宏弼)은 ≪소학≫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여 모든 학문의 입문이며 기초인 동시에 인간교육의 절대적인 원리가 됨을 역설하였다. 그 자신 일생 동안 ≪소학≫을 손에서 놓지 않고 소학동자(小學童子)라 자칭하였다.

이들 이후로도 조광조(趙光祖)·김안국(金安國)·이황(李滉) 등 도학실천(道學實踐)을 중요시한 선비들이 ≪소학≫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사림파들이 민중교화의 수단으로 이를 권장하였으며, 김안국은 경상도관찰사로 재임할 때 ≪소학≫을 한글로 번역한 ≪소학언해≫를 발간하여 민간에 널리 보급하기도 하였다.

1425년(세종 7)에는 우리 나라에서 간행된 ≪소학≫이 음훈주해(音訓註解)가 미비하다 하여 명나라에 파견하는 사신에게 ≪집성소학 集成小學≫ 100권을 구입해 오도록 하였으며, 3년 후에는 주자소(鑄字所)로 하여금 이를 인쇄, 간행하도록 하였다.

1436년(세종 18)에는 사부학당(四部學堂:서울의 동부·서부·중부·남부에 설치되었던 四學의 다른 이름)의 생도들이 ≪소학≫을 어린이가 배우는 학문으로 여겨 평소에는 잘 읽지 않고 있다가 성균관 진학 자격을 주는 승보시(陞補試)가 있게 되면 임시로 섭렵한다는 폐단이 지적되었다.

그 뒤는 사부학당 생도들로 하여금 모두 ≪소학≫ 공부에 노력을 기울이게 하되, 그 내용을 자세히 이해하여 뜻이 잘 통하는 생도만을 승보시에 응시하게 하여 뽑도록 하였다.

조선 말기인 고종 때에는 박재형(朴在馨)이 ≪소학≫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고 거기에 우리 나라 유현(儒賢)의 도학·가언·선행 및 충신·효자·열부의 고사를 첨가하여 ≪해동소학 海東小學≫을 편집, 간행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유교의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배움의 내용을 강조하는 수신서로서, 성리학에 뜻을 둔 유생뿐만 아니라 민간에까지 널리 읽혀져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충효사상을 중심으로 한 유교 윤리관을 널리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학 [小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숙흥야매잠 [ 夙興夜寐箴 ]

요약

조선 중기의 학자 노수신(盧守愼)이 송(宋) 나라 진백(陳柏)이 지은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을 주해한 책.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45호이다.

 

목판본. 1책. 조선시대 성리학의 발달과정과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조선 명종 때 소재(蘇齋) 노수신이 진도(珍島)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중 진백의 《숙흥야매잠》을 읽고 여기에 주해를 한 것이다. 이 책은 1568년 선조에게 진헌(進獻)하여 왕명으로 교서관(校書館)에서 간행하였다. 그뒤 간행본은 없어지고 필사본으로 전해지던 것을 승려 두섬(杜暹)이 다시 사재(私財)를 들여 중간본을 내었다. 영조 때는 이황(李滉)의 《성학십도(聖學十圖)》 중의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를 붙이고 교서관에서 간행하였다. 2012년 10월 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45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숙흥야매잠 [夙興夜寐箴] (두산백과)

 

◎ 절구[ 絶句 ]

정의

기·승·전·결의 4수로 이루어진 한시체.

 

내용

오언·칠언 다같이 기(起)·승(承)·전(轉)·결(結) 4수로 이루어진다., 산행(散行)으로 지은 것이 보통이나 때로는 대장(對仗)을 이룬 것도 있다(대장으로 지을 경우는 전반부만, 혹은 후반부만, 혹은 전체를 하기도 한다.). 절구는 율시(律詩)와 같이 근체시(近體詩)에 속한다. 이는 고체시(古體詩)와의 대칭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근체시는 격률이 아주 엄격하여 평측(平仄)과 압운(押韻)에 있어서 고체시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절구는 시체가 무한한 함축력을 요구한다. 글자수가 적어서 오언절구가 20자, 칠언절구가 28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시인의 정감을 드러냄은 물론이요, 정운(情韻)·시취(詩趣)·화경(化境)까지 자아내어 언외지미(言外之味)와 상외지상(象外之象)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그래서 근체시가 한시 시단에서 가장 고차원적인 묘미를 지닌 예술의 결정체라고 이른다.

절구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절구의 발생이 율시가 생긴 이후인 것을 근거로 하여 율시의 전반부를, 혹은 율시의 후반부를, 혹은 율시의 수미양연(首尾兩聯)을 따서 이루게 되었다는 설(文體明辯)이다. 또 하나는 절구가 당나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찍이 한나라로부터 있었다. 다만 평측만을 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제(齊)나라의 영명(永明) 때에 성률설(成律說)이 형성되면서 절구에 평측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제(齊)·양(梁) 때에는 이미 절구의 정체가 성립되었다는 설이다. 이 두 설 가운데 어느 것이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후자가 유력하다.

절구의 종류는 대략 네 가지로 구분된다. ① 율절(律絶)은 음률이 평기식(平起式)이나 측기식(仄起式)의 정식(定式)에 맞아 격식이 율시와 대체로 같은 것이다. 즉, 단용(單用)하면 율절이고 쌍용(雙用)하면 율시가 되는 것이다.

② 악부절(樂府絶)은 가행체(歌行體)에 속하는 절구로 당인(唐人)의 악부 가운데 율시의 영향을 받은 절구이다. 평측도 대체로 맞는다. ③ 고절(古絶)은 평측이 고르지 않는 4구 시로 고시와 같은 절구이다. ④ 요절(拗絶)은 율절과 고절을 섞어 지은 것으로, 점(黏)과 대(對)를 따지지 않는 절구이다.

절구에서 점은 매구 2자와 4자의 평측이 상구의 2자·4자와 같은 것이며, 대란 매구 2자와 4자 평측이 상구의 2·4와 상반되는 것을 이른다. 그러나 근대에는 절구에 율절만을 사용하고 여타는 쓰지 않아서 평측이 모두 율에 맞으므로 금절(今絶)이라고 부른다. 절구는 통상 평성운이 많고 측성운은 적다. 그리고 율시와 같이 한 운 안에서만 운을 달 수 있다.

오언절구의 정식은 다음과 같다. ① 측기식 평성운 정식(仄起式平聲韻定式) (仄)仄平平仄 平平(仄)仄平(韻) (平)平平仄仄 (仄)仄仄平平(叶) ② 평기식 평성운 정식(平起式平聲韻定式) (平)平平仄仄 (仄)仄仄平平(韻) (仄)仄平平仄 平平(仄)仄平(叶)

칠언절구의 정식은 다음과 같다. ① 측기식 평성운 정식(仄起式平聲韻定式) (仄)仄平平 (仄)仄平(韻) (平)平 (仄)仄仄平平(叶) (平)平(仄)仄平平仄 (仄)仄平平(仄)仄平(叶) ② 평기식 평성운 정식(平起式平聲韻定式) (平)平(仄)仄仄平平(韻) (仄)仄平平 (仄)仄平(叶) (仄)仄(平)平平仄仄 (平)平(仄)仄仄平平(叶) 괄호 안에 있는 평측은 통용을 의미한다.

절구의 작법은 기승전결의 방법이 절대적이다. 절구 4구 중에 첫구가 기이다. 비흥(比興), 또는 서사(敍事)·사경(寫景)으로 서두를 낸다. 중요한 것은 시제에 맞아야 한다. 둘째 구가 승이다. 처음 구를 이어받아야 한다. 셋째 구가 전이다. 영활(靈活)과 운치가 있어야 한다. 넷째구가 결이다. 전구를 수습하여 끝내야 한다. 그러나 시의 경구(警句)는 어디까지나 3·4구에 있으므로 의상과 형상을 결합하여 정경(情景)이 어우러져야만 절구라고 이를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절구는 고구려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수나라 우중문(于仲文)에게 준 <여수장우중문시 與隋將于仲文詩>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이 시는 고시(古詩)이지 절구가 아니다. 5절은 최치원(崔致遠)의 <추야우중 秋夜雨中>, 7절은 최치원의 <도중작 途中作>이 절구의 효시가 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절구 [絶句]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嘉言 (가언)

본받을 만한 좋은 말

 

◎ 舌耕 (설경)

강연(講演), 병호, 보도(報道), 연설(演說) 등(等) 말하는 것을 업(業)으로 삼음

 

◎ 鄙吝(비인)

더럽고 인색한 것.

 

◎ 준승 準繩

평면이 수평이 졌나 안 졌나를 측정하는 수준기(水準器)와 직선을 긋는 먹줄. 주로 규칙이나 일정한 법식을 비유함.

 

◎ 遣 보낼 견

1.보내다, 떠나 보내다 2.파견하다(派遣--) 3.(감정 따위를)풀다, 놓아주다

 

◎ 祛 떨 거

1.(재앙을)떨다, 떨어 없애다 2.내쫓다 3.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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