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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유진의 향기
작성자 관리자 [2021-02-14 23: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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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유진의 향기...한류연구소장 한승범

  

 

대학생 때 여자친구와 비디오방에 간 적이 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최대한 야한 영화를 고른 것이 바로 <여인의 향기>였다. 제목과 달리 영화가 너무 순수하고 감동적이어서 그만 분위기를 망치고 말았다. 둘 다 머쓱하게 나왔던 기억이 있다.

 

작년에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읽으며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토지는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 삶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렸다고 본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박경리가 있다. 토지가 제대로만 번역된다면 박경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가’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평생 트로트를 ‘뽕짝’으로 여기고 외면했던 나에게 한 소녀가 나타났다. 그가 부른 <서울 가 살자> 첫 소절을 듣고 그만 눈물을 쏟았다. 토지에서 느꼈던 엄청난 감동이 그의 노래를 통해 전해졌다. 그는 평범한 노래를 고급스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이렇게 트로트에 ‘입덕(푹 빠짐)’하게 되었다.

 

<여인의 향기>에서 주인공 찰리(크리스 오도넬 분)는 흙수저 집안의 대학생이다. 알바로 어렵게 공부하던 그는 금수저 친구들의 비행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대학 징계위원회는 의리를 지키며 친구들의 비행 진술을 거부한 그를 징계하고 금수저 친구들을 포상한다. 명문대학과 명문집안과의 더러운 결탁이고 야합이다. 의리와 정의를 지키는 촌뜨기 흙수저는 그들의 희생양에 불과했다. 악취가 진동한다. 이에 분노한 퇴역장교 프랭크 슬레이드(알 파치노 분) 중령의 통렬한 비판이 야비하고 비열한 그들의 심장을 찌른다. 이 지점에서 나는 감동의 눈물을 쏟았고, 내 불순한 의도는 무위로 끝났다^^

 

전유진은 포항 어촌에 사는 가난한 집안의 중학생이다. 좁은 아파트에서 할머니, 부모, 동생과 함께 사는 그의 꿈은 부모에게 집을 사주는 것이다. 공부도 못하고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이 소녀가 갑자기 트로트에 푹 빠졌다. 전문 보컬 트레이닝도 안 받고 독학으로 코인노래방에서 트로트를 연습했다. 단 3개월 만에 19회 포항해변전국가요제에 출전해 압도적인 무대로 700만 원 상금과 대상을 거머쥐었다. 아무런 편견 없이 14세 소녀의 천재성과 잠재력을 평가한 심사위원들이 새삼 존경스럽다.

 

일년 반이 지나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2'에 출전한 전유진은 그야말로 광풍과도 같은 인기몰이를 했다. 그가 부른 ‘서울 가 살자’와 ‘약속’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와 감동을 선사했다. 30%에 육박하는 시청률 상당 부분 그가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5주 연속 ’대국민 응원투표’ 1위를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1위도 보통 1위가 아니다. 여러 가지 지표를 종합해보면 전유진 득표율은 나머지 참가자 전체와 비슷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의 인기와 팬덤은 마치 블랙홀과 같다. 실로 경이로운 마력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인기 비결은 불가사의하다. 혹자는 천상계의 음색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중저음과 고음의 완벽한 조화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의 청순한 미모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아름다운 마음씨에 푹 빠지는 사람도 있다. 그를 통해 아련한 첫사랑을 떠올린다는 증언도 줄을 잇고 있다. “한 번도 안 들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다”는 것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그의 인기를 분석하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우리가 사랑에 빠질 때 그것을 설명하는 말은 구차할 뿐이다. 그는 백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위대한 가수이다. 수년 내에 K-트롯 한류로 전 세계를 사로잡을 재원이다. 단언컨대 그는 방탄소년단과 함께 21세기 한류를 이끌 것이다.

 

그런데 경연 초기부터 흉흉한 소문이 온라인에 퍼지기 시작했다. 전유진은 시청률용 미끼에 불과하고 이미 진선미로 내정된 가수들이 있다는 음모론이였다. 전유진이 미성년자이기에 진이 된다면 향후 활용도에 크게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 논리 근거였다. 준결승전부터는 팬의 인기투표가 사실상 진을 결정한다. 거의 50%에 가까운 압도적인 팬덤을 가지고 있는 그가 준결만 오르면 무조건 진이 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준결과 결승에서 애국가를 불러도 진이 된다. 그래서 전유진을 최대한 흥행몰이에 이용한 후 준결 전에 내친다는 논리이다. 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인기를 누리는 국민픽을 누가 내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터무니없는 것이라 여겼다. 민심에 반하는 무모한 불의를 누가 감히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소문이 현실로 바뀌었다. 지난 4일 방송된 '미스트롯2'에서 전유진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시청률을 위해 조롱에 가까운 취급을 당한 소녀는 급기야 눈물을 흘렸다. 그날 나를 포함한 수많은 팬들이 같이 눈물을 흘렸다. ‘전유진’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떠오르고 온라인에는 비난의 글이 넘쳐났다. 사람들은 흡사 가족 잃은 것 같은 슬픔에 빠졌다. 한 네티즌은 “60 평생 가장 경악한 두 가지를 뽑으라면 북한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과 전유진 탈락”이라고 일갈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17년간 끓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을 정도의 충격이었다고 한다. 분노의 파도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다. 그리고 그 파도는 견고해 보이던 오만과 독선의 댐을 무너뜨릴 것이다.

 

한번은 아들이 깡패들에게 맞고 와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절절’하다. 차라리 내가 맞고 말지 자식의 상처와 고통은 정말 참기 힘들었다. 그것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트라우마로 남아 괴롭힌다. 사람들은 전유진에게서 똑같은 감정이입을 한다. 친딸처럼 그를 ‘절절’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도 못하고 내쳐진 것이다. 데스매치에서 상대에게 경연곡을 양보하고, 팀메들리에서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에이스전도 또 양보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니라 ‘탈락’이었다. 탈락 과정에서 그가 겪은 조롱과 모욕은 중학생 소녀에게 너무 가혹했다. 학폭 의혹 참가자에게는 아름다운 퇴장을, 양보의 화신에게는 모욕감을 줬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있다. 탈락 후 그는 “제가 떨어져서 아픈 마음보다 응원해주시고 매일 문자투표 하트 보내주신 팬들의 마음이 아플까 봐 걱정”이라며 “바르고 착한 어른으로 커서 마음을 치유하는 노래를 부르겠다”고 글을 올렸다.

 

부끄럽다. 낯이 뜨거울 정도로 부끄럽다. ‘바르고 착하지 못한 어른들’에게 이용당하고 내침을 당했음에도 ‘바르고 착한 어른’으로 크겠다는 어린 소녀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16세 소녀가 오히려 어른들을 치유하고 위로하고 있다. 그에게는 향기가 있다. 연꽃이 아름다운 것은 더러운 진흙 속에서 청결하게 피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현명한 어른이 되지 않는다. 중학생에게 시기와 질투를 느껴 지옥에 빠진 어른들이 있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 국민의 뜻을 거스른 오만방자한 문화권력자들이 있다. 참 못났다. 거기에는 악취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못난 어른들이 진심을 담아 전유진과 국민 앞에 사과하지 않으면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재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오늘 밤에도 전유진의 향기가 바람에 스치운다.

 

 

〈 e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